▲ 장호진 현대지에프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박홍진 현대그린푸드 대표이사 부회장이 2027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승진했다. <현대백화점그룹>

[비즈니스포스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2027년 정기 임원인사에서도 '한번 믿으면 오래 쓴다'는 철학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오랜 기간 그룹을 이끌어 온 전문경영인들을 승진시키고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 대표들도 유임한 반면 약 7년 동안 한섬을 이끈 대표는 교체했다. 경영 연속성을 중시하면서도 필요한 곳에는 변화를 주는 정 회장 특유의 '안정 속 쇄신' 기조가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29일 현대백화점그룹에 따르면 이날 발표한 2027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장호진 현대지에프홀딩스 대표이사 사장과 박홍진 현대그린푸드 대표이사 사장이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한광영 현대홈쇼핑 대표이사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윤영식 현대지에프홀딩스 부사장과 이헌상 현대그린푸드 부사장도 사장단에 합류했다.

반면 한섬은 유태영 해외패션본부장 전무를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내정했다. 2019년 11월부터 약 7년 동안 회사를 이끈 김민덕 대표이사 사장은 물러나게 됐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인사 기조를 '안정 속 쇄신'으로 설명했다. 기존 경영진을 대부분 유지하면서 핵심 계열사 대표들의 직급을 높이고 한섬 등 일부 계열사에는 새로운 인물을 발탁해 변화를 꾀했다는 점에서다.

이번 인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장기간 경영을 맡아 온 전문경영인들의 위상을 높였다는 점이다.

장호진 부회장은 현대백화점 대표이사 등을 거쳐 2023년부터 지주회사 현대지에프홀딩스를 이끌고 있다. 박홍진 부회장은 2015년부터 현대그린푸드 대표이사를 맡아 10년 넘게 회사를 이끌어 왔다.

정 회장은 이들을 교체하는 대신 나란히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기존 경영진의 경험을 활용하면서 지주회사와 핵심 계열사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려는 선택으로 해석된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그룹의 지속성장을 이끌어온 지주사 및 핵심 계열사 리더십의 격상과 역량 강화를 통해 경영 안정성과 책임경영을 더욱 공고히 해 나가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인사는 정 회장이 그동안 보여 온 ‘한번 쓰면 오래 쓴다’의 경영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정 회장은 계열사 대표를 자주 교체하기보다 기존 경영진에게 장기간 사업을 맡기면서 필요에 따라 선별적으로 변화를 주는 방식을 취해 왔다.

2022년 정기 임원인사에서는 계열사 대표 전원을 유임하며 안정에 무게를 뒀다. 반면 2024년 10월 발표한 2025년 정기 임원인사에서는 현대디에프와 현대L&C, 지누스, 현대이지웰 등 4개 계열사 대표를 교체하며 쇄신에 나섰다.

이번 인사에서는 2년 전 새로 선임한 대표 4명을 모두 유임했다.

박장서 현대디에프 대표이사와 이진원 현대L&C 대표이사, 정백재 지누스 대표이사, 박종선 현대이지웰 대표이사는 2024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발탁돼 이듬해 3월 공식 취임했다. 이들의 임기는 2027년 3월 만료될 예정이지만 이번 정기 인사에서는 모두 기존 자리를 유지했다.

특히 4개 계열사의 경영 성과가 엇갈리는 상황에서도 대표를 교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지선 회장의 경영 철학이 잘 드러났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현대디에프는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 영업흑자 2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와 2분기에도 각각 34억 원, 62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수익성 개선세를 이어갔다.

이에 정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박 대표를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실적 개선 성과를 인정하면서 기존 경영체제에도 힘을 실어준 셈이다.

▲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2027년 정기 임원인사에서도 '믿으면 오래 쓴다'는 기조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백화점그룹>


반면 지누스는 올해 상반기 568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미국 매트리스시장 부진과 관세 부담 등이 겹치면서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현대L&C도 건설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439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감소했다.

현대이지웰은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 764억 원, 영업이익 108억 원을 거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5.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8.4% 감소했다.

정 회장은 실적 개선이 확인된 현대디에프뿐 아니라 경영 정상화가 지연되는 지누스와 현대L&C의 대표도 유임했다. 업황 악화에 따른 실적 부진을 곧바로 경영진 교체로 연결하기보다 기존 대표들이 추진해 온 사업 개선 작업에 시간을 더 부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경영진의 장기 재임 자체를 우선한 것은 아니다.

이번 인사에서 정 회장이 변화를 선택한 곳은 한섬이다.

김민덕 한섬 대표이사 사장은 현대백화점그룹의 기획·관리 분야를 두루 거친 인물이다. 후임으로 내정된 유태영 부사장은 현대백화점 해외·잡화사업부와 현대지엔에프 패션사업본부 등을 거친 해외패션 전문가다.

유 내정자는 2022년 전무로 승진한 뒤 한섬 해외패션사업을 이끌어 왔다. 21일 프랑스 고급 러닝 브랜드 새티스파이의 국내 독점 운영 계약을 발표하며 해외패션사업을 스포츠와 잡화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재무·관리 전문가에서 해외패션 전문가로 대표를 교체한 것은 한섬의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선택으로 풀이된다.

다만 기존 경영진에게 시간을 더 부여한 만큼 앞으로의 실적 개선 여부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누스는 수익성 회복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누스는 2024년 영업손실 54억 원에서 지난해 영업이익 255억 원으로 흑자전환했다. 다만 반덤핑 관세 관련 충당금 환입 등 일회성 이익의 영향이 컸던 만큼 본업의 수익성이 충분히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올해 상반기에는 매출이 287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40% 감소했고 영업손실도 568억 원에 이르렀다.

현대L&C 역시 건설경기 침체 속에서 수익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기존 건축자재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업황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이진원 대표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성과 기반의 내부 인재를 등용해 사장단과 고위임원 진용을 갖추고 경영환경 변화에 유연하고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미래 지향형 인재를 신규 임원으로 선임했다”며 “조직의 역동성과 미래 사업 역량을 집중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