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잔액이 2026년 9월 말 기준 1년 전보다 16.8% 늘었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 증가율은 3.0%에 그쳤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가계대출 규제에 따른 기업금융 확대 기조 속에서도 금리 상승과 경기 불확실성 부담으로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세는 상대적으로 더뎠다.
4대 은행 모두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대출에 소극적 모습을 보인 가운데 우리은행은 유일하게 중소·소호대출이 1년 전과 비교해 줄어들기도 했다.
정부가 생산적금융을 중소기업과 지역경제까지 확산하는 데 힘을 싣는 상황에서 은행들은 건전성을 관리하면서도 중소기업 자금 공급을 확대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게 됐다.
8일 KB·신한·하나·우리금융의 3분기 실적발표 자료를 종합하면 2026년 9월 말 기준 4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잔액(원화대출 기준)은 172조9154억 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148조303억 원)보다 16.8% 증가했다.
지난해 환율 급등과 자본비율 관리 등으로 대출 확대에 신중했던 은행들이 올해는 기업금융에 다시 힘을 실으면서 대기업 대출이 빠르게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 4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 증가율은 2.5%에 그쳤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우리은행의 대기업 대출잔액이 1년 전보다 24.3% 늘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신한은행(17.0%), KB국민은행(15.5%), 하나은행(10.6%)도 모두 대기업 대출이 두 자릿수로 늘었다.
반면 4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9월 말 기준 1년 전보다 3.0% 늘어나는 데 그쳤다. 대기업 대출 증가율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은행별 중소기업 대출 증가율은 하나은행이 5.2%로 가장 높았고 신한은행 3.3%, KB국민은행 3.1% 순이었다. 우리은행은 1년 전보다 3359억 원(0.3%) 줄었다.
개인사업자(SOHO) 대출 공급은 더 주춤했다.
4대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은 9월 말 기준 1년 전보다 0.01% 감소해 사실상 제자리걸음 했다.
특히 우리은행은 4대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중소기업 대출과 개인사업자 대출이 모두 감소했다.
우리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잔액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3% 줄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자본비율 관리 과정에서 기업대출을 전반적으로 줄인 뒤 올해 대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다시 늘리면서 개인사업자 대출 공급은 뒷걸음질 쳤다.
KB국민은행도 개인사업자 대출잔액이 0.1% 줄어 현상유지 수준에 머물렀다. 신한은행(1.0%)과 하나은행(3.0%)은 개인사업자 대출도 늘었지만 여전히 대기업 대출 증가율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정부가 가계대출과 부동산에 집중된 자금을 기업과 첨단산업으로 돌리는 생산적금융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대출 공급에서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한 셈이다.
대기업 대출이 빠르게 늘어난 데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한 자금 수요 확대와 은행들의 우량기업 중심 여신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요 반도체 기업은 양호한 실적을 바탕으로 설비투자와 사업 확대를 위한 자금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도 중소기업과 비교해 신용위험이 상대적으로 낮고 대규모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대기업 대출을 취급하는 것이 기업금융 확대에 유리할 수 있다.
대형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일부 거액 여신이 대기업 대출로 분류되는 점도 은행의 대기업 대출잔액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반면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는 경기 둔화와 원자재 가격, 인건비 상승 등으로 경영 부담이 커지면서 신규 설비투자나 사업 확장을 위한 자금 수요가 상대적으로 부진한 상황이다.
▲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제6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은행들의 건전성 관리 부담까지 겹치면서 4분기에도 대기업 중심의 기업대출 확대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이 높은 수준을 보이는 가운데 향후 기준금리 인상이 현실화하면 이자 부담까지 커질 수 있어 은행들이 우량기업 중심의 대출 확대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4대 은행의 3분기 말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 평균은 0.57%로 2분기 말(0.55%)보다 높아졌다.
은행별로는 우리은행이 0.77%로 가장 높았고 하나은행 0.67%, 신한은행 0.42%, KB국민은행 0.41% 순이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1년 전보다 각각 0.21%포인트, 0.11%포인트 올랐다. 반면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은 각각 0.03%포인트, 0.13%포인트 낮아졌다.
금융당국도 생산적금융 확대 성과가 중소기업 현장까지 충분히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2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제6차 생산적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올해 7월 말 기준 생산적 분야에 264조3천억 원이 공급되고 기업대출 잔액이 2025년 말보다 55조 원 늘어나는 등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하지만 이런 성과가 중소·중견기업이 현장에서 체감할 만큼 충분히 확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자금 흐름의 병목은 해소하고 필요한 곳에 자금이 공급되도록 선제적으로 생산적금융의 기반을 정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에 따라 은행권과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의 협력을 통해 앞으로 3년 동안 지방 핵심 중소·중견기업에 4조5천억 원 규모의 저리 보증부 대출을 공급하기로 했다.
다만 경기 불확실성과 연체율 부담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지원이 중소기업 대출 전반의 증가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는 경기 영향을 크게 받는 데다 환율과 물가, 인건비 부담까지 겹쳐 은행이 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특히 최근에는 사업 확장보다 경영이 어려워져 운영자금이 필요한 기업이 많아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금융 지원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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