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중도 신경쓰면 당은 망한다"면서 사실상 '중도 포기'를 선언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을 포기하면서 강성 지지층 결집에 나서자 장 대표가 '당권 강화'를 위해 지방선거를 제물로 바친다는 혹독한 평가까지 정치권에서 나온다. 
 
국힘 "중도 신경쓰면 당은 망한다", 장동혁 '극우에 발목' 외연확장 포기하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국민의힘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장 대표는 내년 6월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당 '체질 개선'에 나섰다.

장 대표는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 소속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 의회 의원 연수회에서 "지선 패배는 장동혁 지도부나 국민의힘의 패배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패배"라며 "중도를 신경 쓰면 당은 망한다. 이길 수 있는 전사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도 이 자리에서 "지방선거에서 사람을 잘 공천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우리가 중도 타령해서 망한다고 생각한다"며 "조용히 안 싸우고 이미지가 괜찮으면 공천되는데 그래서 안 싸우는 것이다. 잘 싸우는 사람, 당에 헌신하는 사람이 공천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동혁 지도부의 이런 발언은 지방선거를 겨냥한 것이어서 더욱 시선을 끌었다.

중도 확장은 일반적으로 선거 승리의 핵심 요소로 꼽히기 때문이다. 한쪽 극단의 지지만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정치권 중론이다.

서용주 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지난달 28일 MBC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서 "국민의힘이 현재 착각하고 있다"며 "지방선거는 양극단에 대한 지지층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장동혁 지도부의 '중도 포기' 발언을 두고 사실상 외연 확장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이미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달 28일 MBC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서 "나경원 의원이 지금 지방선거에 책임자로 임명돼 있는데 장 대표와 나 의원 모두 지금 중도나 합리적인 보수 쪽으로 돌아오기에는 너무 많이 가버렸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장동혁 지도부의 중도 포기 행보를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먼저 국민의힘 지도부가 극우 세력에 '포획'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중도층의 중요성을 장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도 알고는 있지만 극우 강성지지층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중도로 무게중심을 옮길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서용주 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장동혁 대표도 중도 확장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계속해서 중도로 1도씩 변하겠다'고 했는데 이제 도저히 못 가겠다는 것"이라며 "그러니까 거기를 포기하고 결국에는 본인의 지지층, 건국전쟁2, 윤석열 안기 등 이런 부분으로 가 버렸다"고 말했다.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너무 오른쪽으로 갔으니까 돌아와야 하는데 그때마다 이른바 태극기, 극우, 이런 분들한테 제동이 걸리는 것 같다"며 "나를 뽑아 준 사람들에 대해서 보은해야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힘 "중도 신경쓰면 당은 망한다", 장동혁 '극우에 발목' 외연확장 포기하나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싱가포르 공식오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 대표 행보의 목적이 결국은 본인의 '당권 강화'에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 사례를 참고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여의도 기반이 약했던 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에서 대선 후보 2번과 당대표 2번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자신의 강력한 팬덤을 민주당 당원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당대표 시절 당원 주권 강화를 표방하며 공천 과정과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우파 진영에서 팬덤을 늘려가고 있는 장 대표가 이를 벤치마킹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을 수 있다.

실제 장 대표는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평생당원 초청 간담회'에서 "책임당원의 권한을 더 강화하고 의견이 공직 후보자 선출부터 홍보, 정책까지 당무 전반과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확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당원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왜곡하거나 훼손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여러 가지를 정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 대표의 이런 선명성 강화 전략은 큰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 중론이다.

국민의힘은 최근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10·15 부동산 대책, 내로남불 악재에 휩싸인 집권 여당에 많게는 2~3배 중도층 우위를 내주고 있다.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도 50%대를 수성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맞아 승부처에서 득점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중도층' 응답자 기준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압도하고 있다. 30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민주당은 직전 조사(10월16일 발표)와 같은 39%를 유지했고 국민의힘은 2%포인트 오른 25%로 집계됐다.

지난 8월7일 발표된 조사에서 16%까지 떨어졌던 국민의힘 지지율이 처음 20%대 중반을 넘보면서 양당 격차를 14%포인트까지 좁혔지만 무당층(26%)을 넘어서지 못한 상황은 계속됐다. 응답자 가운데 중도층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36%, 국민의힘은 19%에 그쳤다. 

아울러 이 조사에서 10·15 부동산 대책에 응답자 과반인 53%가 '효과 없을 것'이라고 부정 평가하고 37%만 긍정 평가했다. 중도층 평가(부정 57% 긍정 34%)에서는 더 엄격했다. 하지만 야당 반사이익은 거의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장동혁 체제의 이런 전략이 지방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장 대표의 진영 및 이념 결집 전략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원석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MBC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서 "이러면 민주당이 선거 치르기 쉬워진다"며 "왜냐하면 똑같은 진영 결집, 이념 결집 논리로 대응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으로 인한 헌법과 법치주의 파괴, 내란 청산의 선거다'라고 하면 국민에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기사에서 인용된 여론조사 결과는 지난달 30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나온 것으로, 조사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10월27일부터 10월29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조사는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폰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