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삼성SDI의 삼성물산 보유지분 매각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오너일가가 삼성물산 지분매입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삼성SDI가 지분을 매각했지만 삼성물산에서 오너일가의 지배력은 여전히 높은 데다 오너일가가 삼성물산 지분을 늘리는 것이 또 다른 비판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됐다.
삼성물산에서 오너일가와 계열사를 포함한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36.95%이고 KCC를 포함한 우호지분까지 고려한다면 42%가량이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음을 고려한다면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개인이 일시에 1조6천억 원이라는 거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고 우호세력 KCC의 지분율 역시 높은 만큼 이 부회장이 지금 시점에서 무리하게 삼성물산 지분율을 높이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화재 등이 삼성물산 지분을 해소할 때 논란이 없는 정공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파악했다.
순환출자보다 금산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이 삼성그룹에 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도 삼성그룹 오너일가가 직접 지분 매입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그룹 오너일가가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배력을 공고히 하면 좋지만 삼성전자 주식이 워낙 비싼 만큼 삼성생명이 매각해야 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사드릴 여력이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를 매각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가 자사주 전량을 소각함에 따라 삼성생명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대한 법률(금산법)’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삼성전자 주식을 어느 정도 매각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자사주 소각을 마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9.67%에서 10.43%로 올라간다. 금산법 24조에 따르면 대기업 소속 동일 계열 금융회사가 비금융회사 지분 10% 이상을 두게 될 때 금융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삼성생명은 법의 규제를 받지 않기 위해 10% 초과분인 0.43%의 지분 이상을 매각하겠다고 2월 컨퍼런스콜에서 밝혔다.
여기에 보험업법 개정까지 맞물린다면 삼성생명은 더 많은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보험업법 106조는 계열사 주식 보유액이 총자산의 3%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면서 주식 보유액을 취득원가로 측정한다. 현재 취득원가를 시가로 바꾸는 보험업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원가(5960억 원)로 평가했을 때에는 삼성생명 전체자산의 3%를 넘지 않지만 공정가액(26조)으로 평가한다면 전체 자산의 3%를 크게 넘는다.
삼성생명 전체 자산(258조 원)의 3%는 7조7400만 원가량으로 계산되는 만큼 보험업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18조 원어치를 매각해야 한다.
증권가에서는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지분을 인수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에서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이는 과제도 중요한 현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매입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놓고 관심이 쏠린다.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삼성전자에 팔아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할 자금을 마련할 것이란 시나리오도 나온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43.4%(14조 원)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을 삼성전자에 팔고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물산이 삼성SDS 등의 보유지분을 매각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지분을 전량 사들일 자금을 확보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은경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은 현재 삼성SDS 지분 약 3조4천억 원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를 모두 매각하고 서초사옥 등 추가 자산도 처분하면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사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