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기후변화 위험성 부정' 공식화, "트럼프 이후에도 지구에 악영향 남는다" 비판 거세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각) 위험성 판정 문서 관련 기자회견 참석을 위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 들어서고 있다. 문 오른편에는 '최대 규모의 규제 해제'라고 쓰인 홍보 패널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인정한 문서를 공식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

이에 미국의 기후정책 해체가 본격적으로 가속화돼 향후 수십 년 뒤까지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12일(현지 시각)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백악관은 '위험성 판정(Endangerment Finding)' 문서를 공식적으로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위험성 판정은 2009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연방정부 조사를 통해 확립된 문서다. 인간 활동으로 배출된 온실가스가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시민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미국 정부가 그동안 세운 모든 기후정책의 근거가 되는 문서이기 때문에 폐기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보다 더 빠르게 기후정책을 해체해 나갈 수 있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 역사상 단일 기준 최대 규모의 규제 완화 조치"라며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트럼프 정부 이전에 수립된 각종 온실가스 규제들이 연쇄적으로 폐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셉 고프먼 전 환경보호청 대기 담당 국장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오늘 당장 환경보호청의 모든 규제가 한 번에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곧 도미노처럼 하나씩 쓰러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환경보호청이 위험성 판정에 근거를 두고 있는 차량 온실가스 배출 규제도 폐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수송 부문은 미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28%를 차지하고 있는 고배출 분야다.

환경보호청은 발전소 온실가스 배출 규제도 폐지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놓으며 규제 철폐 움직임을 확대해 나갈 의사를 내비쳤다.

블룸버그는 "정책 변경 자체는 차기 행정부에서 손쉽게 되돌릴 수는 있겠지만 규제 완화로 발생한 오염물질은 수십 년 동안 대기 중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 '기후변화 위험성 부정' 공식화, "트럼프 이후에도 지구에 악영향 남는다" 비판 거세

▲ 리 젤딘 미국 환경보호청장(오른쪽)이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함께 12일(현지시각) 백악관 루즈벨트룸 기자회견장에서 위험성 판정 문서를 공식적으로 폐기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환경보호기금(EDF)에 따르면 이번 위험성 판정 문서 폐지로 향후 30년 동안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이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온실가스 배출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같은 변화는 글로벌 기후 대응을 사실상 좌초시킬 수도 있다.

미국 진보 정치 인사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결정이 미국 시민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위험성 판정 폐기는 우리가 덜 안전하고, 덜 건강한 환경에 노출되게 하고 기후 위기에 맞서 싸울 능력도 떨어뜨릴 것"이라며 "이 모든 것은 화석연료 산업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즉각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뉴섬 주지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무모한 결정이 법정 소송에서 살아남는다면 지역사회에 산불, 폭염, 홍수, 가뭄 등 더 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위협을 가져올 것"이라며 "우리는 이 불법적인 조치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소송을 통해 위험성 판정 폐기가 철회되더라도 미국의 기후 대응 능력이 복구되는 데에는 수십 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환경보호청이 위험성 판정 폐기에 더해 자체 데이터 수집 및 규제 집행 능력을 축소하기 위해 올해 9월까지 3500명이 넘는 직원들을 해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체 직원의 약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저스틴 첸 미국 공무원연맹 지부장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선임 과학자, 변호사, 기타 장기 근속 직원들이 떠나면서 그들이 보유한 기관의 지식도 함께 사라졌다"며 "재건에는 수년, 어쩌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