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법인 운영 새 판 짜는 현대차그룹 정의선, 중국과 인도 콕 찝어 현지인 법인장 앉힌 이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인도와 중국법인장에 현지인을 선임하면서 두 나라 특유의 사업 환경에 대응하는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해외법인 운영 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지금까지는 해외 법인장을 선임할 때 국적과 상관없이 적절한 인물을 찾았지만, 최근 들어 인도와 중국법인장을 현지인으로 발탁했다.

일각에서는 정 회장이 인도와 중국법인장이 눈에 띄는 성과를 낸다면 현지인을 다른 해외 법인장으로 확대 선임하는 기조를 더 강하게 나타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2일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정 회장이 인도와 중국법인장으로 현지인을 선임한 것은 두 나라 특유의 사업 환경이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는 지난 10월 인도법인장에 현지 출신 타룬 가르그를 앉힌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중국법인장까지 현지인인 리펑강을 선임했다.

두 곳 모두 다 현지인이 법인장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도는 29년, 중국은 23년만에 현지인이 현대차 해외법인장이 됐다. 두 사람 모두 내년 1월1일부터 정식으로 법인장 업무를 시작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사업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 가운데 하나가 인도”라며 “인도에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쳐나가기 위해선 글로벌 시장에서 이름값과 상관없이 정부, 공무원들과 관계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는 ‘꽌시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꽌시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신뢰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도 협상과 계약, 정부 규제 문제 해결 등에서 꽌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차는 세계 시장에서 상품성으로 승부를 보고 있지만, 인도와 중국은 모두 정부와 공무원들과의 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에 현지인 법인장 앉혀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 회장은 인도에서 정체된 시장 점유율 확대, 중국에서는 판매 반등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인도는 정 회장이 핵심 미래 시장으로 점찍고 꾸준히 공들이고 있는 곳이다. 현대차·기아는 인도에서 시장 점유율 2위에 올라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점유율이 정체됐다.
 
해외법인 운영 새 판 짜는 현대차그룹 정의선, 중국과 인도 콕 찝어 현지인 법인장 앉힌 이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인도를 핵심 미래 시장으로 점찍고 꾸준히 공들이고 있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인도에 4500억 루피(7조4475억 원)를 투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2030년까지 신차나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 26개를 출시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중국에서는 2016년 자동차 113만 대를 판매하면서 현지 연간 최다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듬해 고고도미사일(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한한령으로 판매량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중국에서 12만5천 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판매량 반등이 절실한 상황이다. 중국은 특히 정부가 자국 전기차 제조사들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차가 경쟁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인도와 중국 시장 모두 내년부터 2030년까지가 중요한 시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이 폭스바겐그룹을 제치고 글로벌 판매 2위로 오르기 위해선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과 인도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인도에 4500억 루피(7조4475억 원)를 투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2030년까지 신차나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 26종을 출시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신모델 출시 라인업에는 전기차 5종과 하이브리차 8종, 천연가스 모델 6종이 새롭게 추가됐다.

중국 시장에서도 공격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2030년까지 중국 판매 비중을 전체의 8%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올해 예상 판매량에 비해선 4배, 판매 비중으로 따지면 2배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현대차는 상반기까지만 해도 중국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60% 가까이 줄었지만, 하반기 들어서 판매량이 반등했다. 이 흐름을 내년 이후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출시된 중국 전용 준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일렉시오도 흥행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이상으로 전기차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장으로 꼽힌다.

현대차에 인도와 중국 모두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현지인이 법인장으로 선임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타룬 가르드 현대차 인도법인장과 리펑강 현대차 중국법인장이 성과를 낸다면 다른 해외법인들에서도 현지인을 법인장으로 임명하는 기조가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두 현지인 법인장 선임을 보면 현대차가 최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현지화 전략이 뚜렷이 드러난다”며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를 데려다 놓는다고 해도 현지 출신 전문가보다 시장 상황을 잘 알기는 어렵기 때문에 현지인 법인장들이 현대차의 현지화 맞춤 전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