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후대응 '파리협정 체제' 무용론 솔솔, 기후총회 의사결정 재편 예고

▲ 14일(현지시각)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COP30 사전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COP30 사무국 >

[비즈니스포스트] 최근 세계 각국이 약속한 기후목표가 지켜지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이어져온 글로벌 기후대응 노력이 세운 목표와 비교해 한참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에 기후대응 강화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인 기후총회의 '만장일치제' 합의 방식을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6일(현지시각) 프란체스코 그릴로 이탈리아 보코니 대학교 사회정치학 교수는 더 컨버세이션 사설을 통해 "효율성과 민주주의의 결여를 해소하기 위해 기후총회의 의사결정 과정을 점진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며 "오늘날의 의사결정 방식은 만장일치를 추구하고 있어 느리고 미흡한 수준의 대응 밖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릴로 교수가 이같은 주장을 내놓은 이유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가 주관하는 기후총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협정'에 의거해 글로벌 기후대응 수준을 매년 결정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는 유엔이 정한 글로벌 다자주의 원칙에 따라 참여국 전원이 합의해야 최종결정이 도출되는 방식으로 열리고 있다.

파리협정이란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합의된 조약으로 산업화 이전 시대와 비교해 글로벌 기온상승을 1.5도 아래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후총회가 사용하는 만장일치 방식은 소수국가의 목소리도 무시하지 않고 의사결정에 반영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반대로 소수국가를 무시하지 않기 때문에 발목을 잡힌다는 허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2023년 11월에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당시 최종 합의문에는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라는 문구가 들어갈 것으로 전망됐으나 사우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산유국 반대로 무산됐다.

유럽연합(EU)과 여러 개발도상국들의 항의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이라는 문구가 들어갔으나 단계적 퇴출보다는 대응 수준이 낮아지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당시 기후외교 전문가들은 기후총회의 의사결정방식을 과반수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을 여럿 내놨었다.

그릴로 연구원은 "현재 기후총회에는 과반수 방식 투표보다 더 야심찬 변화가 필요하다"며 "기후변화에 중대한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컨데 기후변화에 취약한 소규모 나라들에는 국내총생산(GDP)이 아닌 그들이 실질적으로 입는 피해에 비례해 더 큰 표결권을 부여해야 한다"며 "또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겪을 청년세대들이 구성한 청년총회에서 이제는 기후총회에서 직접적으로 표결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후대응 '파리협정 체제' 무용론 솔솔, 기후총회 의사결정 재편 예고

▲ 14일(현지시각)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사전회의에 참석한 안드레 코레아 두 라고 COP30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같은 요구를 하는 것은 전문가들 뿐만이 아니다. 유럽연합은 1995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기후총회의 의사결정 방식을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2011년에는 멕시코와 파푸아뉴기니가 정식으로 의사결정 방식을 만장일치에서 4분의 3 동의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릴로 연구원은 "현재 기후 거버넌스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가 기후대응을 논의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이같은 경험을 통해 다른 세계 문제들을 해결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7일 외신 보도와 국제 연구단체 발표 등을 종합해보면 현재 파리협정 체제는 실패로 끝날 위기에 처한 것으로 평가된다.

16일(현지시각) 국제 비영리단체 '세계기상특성(WWA)'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100년까지 세계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2.6도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프레데리케 오토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기후과학 교수는 "파리협정은 강력하고 법적 수속력이 있는 프레임워크이고 우리가 기후변화의 가장 강한 영향을 피해갈 수 있게 해주고 있다"며 "하지만 각국은 파리협정을 통해 약속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서 석유, 가스, 석탄을 퇴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글로벌 시장분석업체 '우드맥킨지'는 2050년 이후에도 화석연료가 세계 에너지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1~55%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고 발표했다.

디에고 에르난데스 디아즈 우드맥킨지 파트너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현재로서는 2030년대까지 석유 수요가 정점에 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화석연료 경제와 세계와 각 지역사회가 가지는 결합성을 따져봤을 때 2050년에도 절반이 넘는 에너지원이 화석연료일 것으로 예측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기후총회 개최를 담당하는 사무국은 여러 주장들을 반영해 이번 회의에서는 최종 합의 외에 다른 기후대응 논의에는 만장일치가 아닌 방법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16일(현지시각)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사무국은 국가간 협상그룹 회의에서는 만장일치가 아니라도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안드레 코레아 두 라고 COP30 의장은 "COP30은 이행의 COP가 돼야 한다"며 "우리는 여러 국가들과 공동 이니셔티브를 결성해 파리협정 목표를 이행할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같은 방식의 효과가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회의 과정에서는 만장일치 합의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진전이 나올 수 있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