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리포트 10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그리고 2025년 한국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왼쪽부터), 베니치오 델 토로, 체이스 인피니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2025년 9월 18일 목요일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레드카펫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영화는 미국의 정치 상황을 풍자한 블랙코미디로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다. 2025년 한국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할 뿐 아니라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코로나19에 치이고 OTT로 망해가고 있는 영화관을 오랜만에 찾았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

어쩌면 단순한 구성이다. 납치된 딸을 되찾으려는 아빠의 고군분투.

다만 아빠는 칼 잘쓰는 특수부대나 CIA 출신이 아니다. 마피아 킬러 쪽도 아니다. 젊을 때 혁명을 한답시고 날뛰다 지금은 숨어사는 술주정뱅이다.

이 정도라도 일부러 영화관을 찾을 일은 아니다. 더구나 블랙 코미디라고 하지 않나. 좌충우돌하면서 딸을 구할 것이고, 마지막 장면은 부녀 화해와 아빠의 갱생으로 끝나겠지.

감독의 솜씨가 여기서 빛난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현재 전 세계 영화계에서 천재감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영화판에서는 그를 첫글자를 따서 PTA라고 줄여 부른다.

PTA 감독은 찌질한 아빠(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만큼 분량을 할애한다. 딸을 낳고 떠나버린 엄마, 딸을 납치해간 특수부대 대장(숀 펜), 딸의 가라데 사범(베니치오 델 토로)이 스크린을 채우면서 영화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감독은 세 명의 걸출한 배우를 앞세워 관객에게 묻는다. 극좌와 극우가 판치는 세상에서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엄마는 극좌 혁명조직을 이끄는 리더였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엄마는 멕시코 국경 근처에서 불법 체류자 수용소를 습격해 이들을 해방시킨다.

특수부대 대장은 지독한 백인우월주의자이다. 그는 미국을 지하에서 움직이는 백인 비밀 클럽에 가입할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았다.

엄마와 특수부대 대장은 2025년 현재 미국 정치 지형의 양극단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이를테면 미군 특수부대가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을 습격하는 장면은, 미국 이민당국이 지난 9월4일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시솔루션 합작공장을 습격해 우리 노동자 300여명을 끌고가는 장면과 너무나 흡사하다.

2025년 전 세계는 극우로 몸살을 앓고 있다. 1970년대까지 극좌 세력이 서구 사회를 위협하던 것과 반대로 2020년대는 극우 세력이 세계 각국에서 우후죽순처럼 자라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은 내전을 우려할 정도로 갈등 수위를 끌어올렸다. 전 세계적 차원에서는 정치, 경제 질서를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유럽은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수백만 명의 이주민이 유럽에 몰려들면서 우경화의 불이 당겨졌다. ‘이민자 반대’를 앞세우는 극우 정당은 각국에서 약진했다. 믿었던 독일에서도 2당의 지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에서는 ‘일본인 퍼스트’를 앞세우는 신생 정당인 참정당이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15석을 확보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한국은 예외일까.

지금 한국에서도 극우세력은 뚜렷한 정치적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 용산 아스팔트를 메웠고, 1월19일 서울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부렸다. 지금도 곳곳에서 혐중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제2 정당인 국민의힘의 우경화를 우려하지만,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 믿는다.

요컨대 한국은 극우 문제에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잠시 긴장을 늦추고 있다면 순식간에 우리 사회를 잠식할 수도 있다.

다시 물어보자. 우리는 극우, 극좌의 극단 세력과 어떻게 맞서야 할까.

PTA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정답을 주려 하지 않았다. 사실 누구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

영화를 보면서 누구는 납치된 딸에서, 누구는 가라데 사범에서 힌트를 얻을 것이다. 마지막에도 마리화나를 피우는 찌질이 아빠가 답일지 모른다. 관객이 미래의 가능성을 엿봤다면 PTA 감독은 성공한 셈이다.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엘 지블랫 하버드대학 정치학 교수는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이들은 지금의 미국을 두고 ‘미국 민주주의는 위험하다’고 절절히 호소한다.

“민주주의 수호는 이타적인 영웅의 과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다는 말은 우리 자신을 위해 일어선다는 뜻이다.”

1970~80년대 한국의 어느 대학생 자취방에서 하던 소리가 아니다. 2023년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들이 한 말이다. 안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