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우를 해체하려면 부위별 육질부터 알아야 한다. 칼은 그 다음에 잡는다. 그렇게 칼 하나 들고 앞가슴에서 아랫배에 이르는 부위를 잘라내면 양지가 나온다. 등뼈 바깥쪽을 발라내 등심을 얻거나, 그 끄트머리에서 채끝을 확보할 수도 있다.

등뼈 아래쪽에서 소량의 안심을 얻기도 한다. 앞·뒷다리 무릎 주위엔 근육질의 사태가, 옆구리엔 갈빗살이 붙어 있다. 하지만 칼로만 소를 해체하는 건 아니다. 
[데스크리포트10월] 미분으로 풀어본 요즘 금융 트렌드

▲ 조각 투자는 우리 사회의 모든 사물, 사건을 금융의 대상으로 만든다. 한우도, 그림도, 대형 선박도 투자 상품이 된다. <연합뉴스> 



미래에 성체 한우가 될 송아지를 ‘돈’으로 추상화한 뒤, 그 가치를 여러 사람이 나누는 방법도 있다. ‘금융적 칼질’에 해당한다.

그렇게 송아지를 추상적·금융적으로 자르고 쪼갠 뒤, 그 송아지가 어엿한 소가 돼 높은 가격에 팔리면 다시 가치를 분할한다. 
 
금융적 칼질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육질을 구분할 필요도 없다. 해체 못 할 대상은 없다. 명품 시계, 명품 가방, 고가의 와인, 부동산, 수퍼카, 선박 심지어 유명 작가의 그림·조각도 다 자르고 쪼갠다.

재질도 관계없고, 재질 같은 것 없어도 관계없다.

그게 요즘 인가를 앞두고 라이선스 신청을 받고 있는 ‘조각 투자’ 유통 플랫폼에서 벌어질 일이다.

조각 투자 플랫폼에 관심이 쏠리는 건 나중에 토큰 증권(Security Token, ST)이 법제화되고 나면, 금융 시장에 미칠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주식이나 채권을 디지털화해 발행하면 그게 토큰 증권이다. 

조각 투자는 말 그대로 돈이 될 대상을 조각 내 투자하는 행위다. 다 자란 한우는 경매 시장에서 한 마리 가격이 1천만 원에 육박한다. 투자자들은 송아지의 지분 일부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산다.

송아지 한 마리도 혼자 투자하려면 경제적 부담이 크다. 그 가치를 1000원~10만원으로 분할하는 순간, 투자의 장벽은 허물어진다. 한 점에 수십억 원 나가는 그림도, 세월에 따라 가치를 더하는 와인도, 천문학적 가격의 거대 선박도 그런 식으로 쪼개 누구나 투자에 뛰어들 수 있게 만든다. 

움직이는 물체의 순간적 변화율을 구하기 위해, 시간이나 거리를 점이 될 때까지 잘게 쪼개는 게 미분(微分)이다. 수백 년 전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고안한 극한의 분할이다. 그런데 미분이란 용어의 함의는 현대사회에서 수학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무언가를 잘게 쪼개는 행위는 금융 분야에서도 각광을 받은 지 오래다. 조각 투자에서처럼 투자의 대상을 미분하면 소액 투자가 가능해지고, 그럼 훨씬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미분은 투자의 대중화, 금융자본주의의 확장을 위한 핵심적인 도구다.

요즘 인기 절정의 ETF(상장지수펀드)만 봐도 그렇다. ETF는 특정 테마(또는 업종)와 관련된 기업 자산들을 묶어 그 주가를 지수(인덱스)화하고 주식처럼 거래소에 상장해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상품이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ETF 역시 기업들의 가치를 잘게 쪼갠 뒤(미분) 재조립하는(적분) 금융 상품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 가치를 갖는 모든 대상을 쪼갤 수 있는 사회가 됐다. 사물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야구나 축구의 승부도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모든 경제적 가치는 쪼개진다.

가치를 갖는 모든 것은 투자 가능하고, 미분 가능하다. 미분은 투자자의 범위를 급속하게 확장시킨다.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사물과 사건 일체는 금융을 매개로, 지극히 작은 단위로 쪼개질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사회 전체가 금융의 대상, 투자의 재료다.

이제, 현대 금융의 예리하고 현란한 칼날 덕에 누구든 큰돈 없이도 투자자의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됐으니 즐거운 일이지만, 무슨 까닭에서인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이지형 금융증권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