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그룹은 HMM 경영권 매각 예비입찰에 응한 기업 4곳 중에서 사세, 자금동원력, 물류시너지 등이 상대적으로 밀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수합병 경험이 풍부한 김 부회장이 꺼내들 묘수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이 HMM이라는 대어를 낚을 채비에 나선다. 동원그룹은 예비입찰에 응찰한 다른 기업들보다 상대적으로 밀린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6년 쟁쟁한 기업들 사이에서 동부익스프레스를 최종 인수하는데 성공한 김 부회장이 이번에도 역전극을 써내릴지 관심이 모인다. 2023년 1월2일 동원그룹 유튜브 공식채널에 공개된 신년사 영상에 김 부회장이 등장한 모습. <동원그룹 유튜브 채널 갈무리>
25일 인수합병 업계에 따르면 HMM 인수전에 나서는 동원그룹을 두고 물류사업 시너지를 증명할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계열사 동원로엑스는 국내 항만 6개, 물류센터 60개, 컨테이너 야드(CY) 등 야적장 36개소(114만㎡)를 통해 연간 컨테이너 30만TEU와 벌크 및 중량물 등을 하역하고 육상운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동원글로벌터미널부산이 운영하고 있는 부산 신항 서컨테이너부두는 국내 최초 완전 자동화터미널 구축을 목표로 현재 단계적으로 시설 개장을 앞두고 있다. 서컨테이너부두가 2026년 7월 2-6단계 개장을 마치면 연간 컨테이너 355만TEU를 처리할 수 있다.
HMM은 전 세계에서 터미널 8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지분 20%를 보유한 HMMPSA신항만(부산 신항 4부두)과 지분 5.55%를 보유한 한국국제터미널(허치슨포트광양) 등을 통해 2곳에만 간접적으로 참여할 뿐이다.
항만터미널을 확보할 수 았다면 해운선사의 정시운항과 하역비 절감 등이 가능해진다. 또한 동원로엑스의 각종 육상운송망과 연계해 종합물류서비스 제공하는 등 HMM의 가려운 부분을 일부 긁어줄 수 있다.
인수에 필요한 현금동원력 측면에서는 동원그룹은 자체 보유 현금이 가장 적지만 '형제사이'인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지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동원그룹의 보유현금은 상반기 말 기준 약 6천억 원으로 HMM의 최소 예상가격 5조 원을 맞추려면 재무적투자자(FI)와 연합 필요성이 제기된다.
하림그룹은 KB국민·신한·우리은행, 미래에셋·NH투자증권 등 다수의 재무적투자자를 끼고 인수전에 뛰어든 반면 동원그룹은 하나은행 한 곳만 확보했다.
김남정 부회장은 과거 쟁쟁한 적격예비후보 사이에서 동부익스프레스(현 동원로엑스) 인수전에서 승리를 거머쥔 적이 있다.
2015년 시작된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에는 신세계이마트, 현대백화점, CJ대한통운, 한국타이어, 한앤컴퍼니, MBK 등이 적격예비후보(숏리스트)로 추려졌는데 동원그룹은 가격에 대한 이견으로 정작 본입찰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김 부회장은 2016년 매각 측인 KTB프라이빗에쿼티의 경영진이 교체된 것에 주목해 가격재협상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최종적으로 2016년 12월 4250억 원에 주식매매계약을 이끌어냈다.
당시 오경석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시중에서 예상했던 4700억 원보다 낮은 가격이다”며 “동원산업은 유통의 이익 창출력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고 물류 역시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고 평가를 남겼다.
HMM 인수전은 동원그룹의 역사에도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인수합병을 통해 사세를 확장해온 동원그룹이지만 조 단위의 ‘대어’ 인수합병에 도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동원그룹이 성사시킨 굵직한 인수합병건을 살펴보면 △2008년 스타키스트 3800억 원(3억6300만 달러) △2016년 동부익스프레스 4250억 원 △2014년 테크팩솔루션 2500억 원 등 규모면에서 HMM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 동원그룹은 자체 현금보유량이 부족해 HMM을 재무적투자자를 확보해야한다. 이에 한국투자금융지주의 등판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과,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사진)은 친형제관계로 김남구 회장은 2004년 동원그룹의 금융부문을 분리독립해 나갔다.
김남정 부회장은 2019년 은퇴를 선언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친형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동원그룹의 금융부문을 계열분리해 나가면서 동원그룹을 승계하게 됐다.
김 부회장은 1996년 말단사원으로 입사해 생산 현장에서부터 시작해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2011년 지주사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에 오르며 전면에 나선 이후 2013년 12월에는 동원그룹 부회장에 오르며 사실상 2세 경영을 시작했다.
참치잡이로 시작한 동원그룹은 △물류 △포장재 △2차전지 △축산유통 △건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동원그룹은 2022년 매출 9조263억 원, 영업이익 4844억 원을 거두는 등 외형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동원그룹은 지난해 중간지주사 동원산업에 지주사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합병시키는 지배구조 개편을 마치고 신사업 진출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동원그룹은 최근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상연어양식 △완전 자동화 스마트 항만 △2차전지 소재 및 부품 등을 육성하고 있다.
합병과정에서 합병비율을 두고 동원산업의 기업가치가 저평가 됐다며 소액주주들이 반발하자 동원그룹은 합병비율을 재조정했다. 김 부회장 몫으로 돌아갈 동원산업 지분율이 기존 48.43%에서 43.15%로 낮아지게 됐던,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HMM 경영권 매각은 21일 예비입찰을 마쳤다. 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하림그룹, LX그룹, 동원그룹 등과 독일 해운선사 하팍로이드가 응찰했다.
한국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매각 측은 적격인수후보를 추린 뒤 실사를 거쳐 본입찰을 실시할 예정이다. 매각 대상인 HMM 주식의 가치는 25일 종가기준 약 6조7천억 원에 이른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