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기차시장이 2020년을 전후로 빠르게 개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그동안 전기차 배터리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놓고 꾸준히 나오던 '회의론'이 힘을 잃고 있다.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주요 배터리업체가 전기차의 성장 가능성에 확신을 찾은 만큼 시설 투자를 통한 사업 확대에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 (왼쪽부터)박진수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 전영현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사장. |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17일 "유럽의 친환경 규제 강화와 자동차업체의 전기차 출시 확대, 세계 전기트럭시장 개화가 전기차 배터리시장 성장에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연구원은 특히 대용량 배터리 제조기술에 앞선 한국 배터리기업들의 수혜가 집중될 것으로 바라봤다.
전기차시장이 앞으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은 수년 전부터 자동차 관련업계와 증권가를 중심으로 힘을 얻었다. 세계 주요 배터리업체도 이를 대비한 기술 개발과 선제적 투자를 지속해 왔다.
하지만 전기차시장의 성장 속도가 기대보다 늦어지고 업체들 사이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전기차 배터리기업들이 투자 성과를 확인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점차 고개를 들었다.
정부 지원을 받은 중국 배터리업체들이 급성장해 시장을 장악한 한편 배터리 원재료 가격은 크게 올라 전기차 배터리의 수익성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던 점도 이런 반론에 무게를 실었다.
전기차 배터리업체들에 불안요소로 꼽히던 이런 문제점들이 최근 일제히 해결 국면에 접어들면서 마침내 시장 성장을 낙관할 만한 사업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대 35% 감축하는 환경 규제안을 연말까지 확정해 발표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도 전기차시장의 부양정책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세계 자동차업체들이 환경 규제에 맞춰 전기차 출시를 확대해야 하는 압박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 중국 배터리기업들이 잇따라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생산량을 대거 감축하면서 배터리 원재료 공급 부족이 해소되고 있는 점도 배터리업황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증권사들은 전기차시장의 개화가 2020년을 전후로 본격화될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세계 주요 자동차업체들이 이 때부터 전기차 출시를 대폭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박연주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2019년까지 전기차 배터리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겠지만 2020년부터 전기차 대중화로 판매량이 급증하며 성장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100만 대 안팎에 그친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전기차시장 규모는 2020년 500만 대 수준으로 급증하면서 전체 자동차시장에서 5% 가까운 판매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됐다.
그동안 전기차시장의 성장 전망이 불투명해 투자 속도를 조절하던 한국 배터리업체들도 공장 증설에 다시 공격적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부터 전기차 배터리 고객사들의 수요에 대응하려면 최소한 1년 정도 앞서 배터리공장 투자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LG화학은 한국과 폴란드, 중국의 배터리공장에 모두 증설 투자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만큼 공장 가동을 앞당기기 위해 투자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DI는 상반기 가동을 시작한 헝가리 배터리공장에 추가 생산라인 증설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연간 2조 원 가까운 금액이 전기차 배터리의 생산 확대를 위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LG화학의 배터리 생산능력은 지난해 약 15GWh(기가와트시)에서 2020년 80GWh까지, 삼성SDI의 생산능력은 15GWh에서 30Gwh까지 급증할 것으로 추정된다.
SK이노베이션은 한국과 유럽, 중국과 미국 배터리공장을 동시에 증설하면서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은 2019년까지 현재의 11배 수준인 12GWh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업체의 한 관계자는 "구체적 시기는 확답하기 어렵지만 전기차 배터리시장의 성장을 확신하고 있다"며 "수요 증가에 대비해 시설 투자를 계속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글로벌 전기차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경쟁력을 갖춘 배터리업체의 수는 제한적"이라며 "LG화학과 삼성SDI 등 상위업체에 주문이 집중돼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