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두 가지의 현안을 과제로 안고 있었다.

박근혜 게이트 사태를 거치며 훼손된 삼성의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일과 삼성그룹 총수로서 미래 성장을 이끌어갈 확실한 리더십을 보여줄 만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오늘Who] 이재용, 삼성 향한 기대에 '180조 투자'로 답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그룹이 8일 향후 3년 동안 반도체와 바이오 등 핵심사업에 18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점은 이런 두 가지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이 부회장의 '승부수'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문재인 정부가 재벌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고, 박근혜 게이트 관련 재판도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경영 행보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부회장은 석방된 뒤에 국내 공식행사에 일체 참석하지 않고 해외 출장을 통해 경영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정부가 먼저 삼성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면서 이 부회장이 나설 만한 명분을 실어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초 인도 순방길에 이 부회장을 만나 국내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8월6일 삼성 평택 반도체사업장을 방문해 이 부회장에게 삼성이 대표주자로서 경제 성장에 앞장서 달라고 요청했다.

삼성그룹은 정부의 그런 요구에 예상을 크게 뛰어 넘는 180조 원 투자라는 계획으로 화답했다. 특히 130조 원을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밝혀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적극 지원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180조라는 투자 규모는 삼성그룹의 존재감을 드러냄과 함께 경제 성장 둔화와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앞장선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커 보인다.

삼성그룹은 투자 확대를 통해 주요 계열사에 약 4만 명의 임직원을 추가로 채용하며 모두 70만 명에 이르는 직간접적 고용 유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투자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며 "진정성을 보여주고 지속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180조 원의 투자 발표로 정부와 관계 개선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삼성그룹의 미래 성장을 위한 기반을 확실하게 구축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삼성그룹은 대부분의 투자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핵심사업에 들여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경쟁사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사업체질을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사업은 삼성그룹 전체 실적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데 최근 들어 중국 정부 차원의 강력한 물량 공세에 직면하며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런 위기에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오히려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면서 글로벌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인공지능과 5G통신, 바이오사업과 자동차 전장부품 등 삼성그룹의 핵심 신사업분야에도 모두 25조 원 정도가 투자된다.

아직 실적에 기여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사업에도 초반부터 대규모 투자금을 들여 육성함으로써 '이재용 시대'에 걸맞는 주요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직 이 부회장이 공식 석상에 등장한 일이 드물고 재판도 진행중인 점을 고려하면 이른 시일에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논란이 벌어진 점도 이를 서두르지 않을 만한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투자 계획이 사업분야별로 더 구체화되고 투자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 부회장이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총수 역할로 보폭을 넓혀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사업을 위한 투자뿐 아니라 국내 신생기업 및 중소기업과 협력사 지원, 소프트웨어분야 인재 육성을 위한 지원 방안도 대거 내놓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김 부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기업의 본분을 잃지 않고 국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회사가 되도록 사회에 도움이 되는 가치를 열심히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