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협상에 직접 나섰다. SK하이닉스의 투자조건에 아직 확정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직접 담판을 지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도시바가 여러 인수참여자와 구체적인 조건을 놓고 계속 논의를 이어가며 웨스턴디지털과 법적분쟁을 겪는 등 불확실하던 상황에서 최 회장이 원만한 협상을 이끌어냈을지 주목된다.
블룸버그는 28일 “SK하이닉스와 델에 이어 애플까지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의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계약에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도시바도 이날 매각계약을 체결한다는 공식발표를 내놓았다.
SK하이닉스는 27일 이사회에서 컨소시엄에 모두 4조 원 정도를 출자해 인수에 참여하는 투자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향후 의결권이 있는 지분을 15%까지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이다.
하지만 아직 도시바의 경영정보나 반도체기술 등에 SK하이닉스가 접근할 수 있는지는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회장이 이사회 직후 도시바와 협상을 위해 일본으로 출국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 회장은 이날 SK하이닉스 이사회에서 나온 투자계획 등을 검토한 뒤 일본 출장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루세 야스오 도시바 부사장은 27일 아사히신문을 통해 “주요 과제가 해결된 만큼 이른 시일 안에 최종계약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과 SK하이닉스가 모두 인수참여에 동의한 상황을 고려한 발언으로 추정된다.
도시바가 결국 매각계약을 체결한다고 공식발표하며 SK하이닉스도 인수에 큰 걸림돌을 넘게 됐다. 최 회장이 직접 협상에 나선 노력이 성과를 낸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반도체 인수가 ‘완성작’으로 거듭나려면 아직 여러 과제가 남아있다.
웨스턴디지털은 합작법인 설립계약을 이유로 도시바의 반도체 매각이 위법이라고 주장하며 2019년까지 매각중단을 요청하는 등 법적대응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방침을 앞세우고 있다.
일본 정부펀드는 웨스턴디지털과 도시바가 합의할 경우 컨소시엄을 통해 인수전에 뒤늦게 참여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인수조건이 변경되며 SK하이닉스 등이 또 재협상에 나서야 할 수도 있다.
결국 도시바와 협상에 직접 결론을 내기 위해 나선 최 회장이 이런 변수에 대해서도 도시바와 충분한 논의를 거쳤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 회장은 4월에도 직접 일본에 출장을 나가 도시바 경영진과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공식일정에 참석하기 위해 28일 미국으로 출국하는 만큼 애플이나 웨스턴디지털 등 인수전에 이해관계가 얽힌 기업과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도 나온다.
SK하이닉스가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도시바 반도체 인수에 참여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남대종 KB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참여로 얻을 수 있는 단기적인 성과는 투자수익에 그칠 것”이라며 “도시바의 반도체기술이나 생산시설을 활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도 SK하이닉스가 단기적으로 낸드플래시사업 가치와 지분법 이익을 늘릴 수는 있겠지만 확보하는 지분율이 크지 않아 더 직접적인 수혜를 입기는 어렵다고 봤다.
SK하이닉스는 다국적 기업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참여한 만큼 다양한 협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가능성에 불과할 뿐 도시바 반도체 인수참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바와 광학기업 호야 등 일본기업은 도시바 반도체의 의결권 50.1%를 확보한다. 일본 정부펀드가 나중에 인수에 참여할 경우 일본 측이 확보하는 의결권은 모두 70% 정도에 이른다.
일본은 반도체 기술보호 의지가 강력한데 막대한 영향력을 갖추게 되는 만큼 SK하이닉스가 지분을 확보해도 실제 성과로 이어내기 위해 갈 길이 먼 셈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당초 도시바 반도체의 의결권 33.4% 확보를 추진했다. 최 회장으로서는 인수전 판도가 지금과 같이 바뀐 데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는 “베인캐피털 컨소시엄과 도시바 사이 지분매각에 관한 최종계약에 따라 투자가 변경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