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위탁생산 기술력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린 데 이어 시장점유율 확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글로벌 1위 TSMC와 격차를 좁히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높이려면 가격경쟁이 치열한 중저가 반도체 위탁생산시장까지 진출을 확대해야 하는데 입지를 확보하기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
|
▲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부사장. |
삼성전자는 가격경쟁력 확보와 본격적인 외형확대를 위해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반도체에도 대규모 시설투자를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25일 로이터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사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두고 고객사 확대에 공격적으로 나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이런 계획을 공개하며 “5년 안에 삼성전자의 점유율을 3배 이상 끌어올려 글로벌 위탁생산 2위 업체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위탁생산시장에서 대만 TSMC는 50.6%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를 유지했다. 미국 글로벌파운드리가 9.5%로 2위, 대만 UMC가 8%로 3위를 차지했다.
정 사장이 내놓은 목표는 삼성전자의 점유율을 현재 8% 미만에서 25%까지 끌어올리는 것으로 경쟁업체들의 고객사를 대거 빼앗아오는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TSMC와 맞대결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TSMC는 최대 고객사인 퀄컴과 애플 등의 반도체 수주를 놓고 수년째 치열한 기술경쟁을 펼치고 있다.
기존에 TSMC에 집중됐던 퀄컴의 AP(모바일프로세서) 위탁생산물량이 점차 삼성전자로 이동하고 있는데다 애플이 내년 아이폰에 탑재하는 AP도 삼성전자가 양산을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처럼 공정기술력을 앞세운 고성능 반도체 위탁생산에만 집중해 퀄컴 또는 애플과 협력을 강화하고 메모리반도체 등 주력상품의 공급망을 확대하는 효과를 노릴 것으로 예상됐다.
현실적으로 TSMC가 지배하는 위탁생산사업에서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단기간에 점유율을 따라잡거나 삼성전자의 실적에서 위탁생산이 의미있는 비중을 차지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올해 삼성전자의 전체 반도체 영업이익에서 시스템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3% 정도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자체설계 반도체를 제외한 위탁생산사업만 따지면 비중이 더 줄어든다.
하지만 정 부사장은 “삼성전자의 위탁생산사업은 이른 시일에 새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앞선 기술력이 고객사 확보에 확실한 장점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 부사장은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존에 대형고객사에 그쳤던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 고객사를 소규모 기업까지 적극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대형 반도체기업들은 주로 모바일프로세서와 그래픽칩 등 수요가 많은 반도체의 위탁생산을 맡긴다. 반도체의 구동성능과 공정기술이 직결되는 만큼 삼성전자 등 기술력이 높은 업체를 선호한다.
하지만 소형 반도체기업들은 주로 센서와 디스플레이 구동칩 등 성능에 덜 민감하고 공정기술력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제품을 설계해 생산을 맡긴다. 삼성전자가 이런 사업분야까지 적극적인 시장진출을 예고한 셈이다.
글로벌 위탁생산 상위업체들은 공정기술력이 뒤처져도 소규모 고객사의 제품을 대량으로 수주하는 물량공세를 통해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자연히 가격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위탁생산 사업분야를 확대할 경우 점유율을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지금처럼 고성능 반도체 생산에 집중하는 것보다 나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삼성전자가 경쟁업체와 점유율 싸움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메모리반도체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에도 대규모 시설투자를 벌여 규모의 경제효과로 원가절감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최근 화성과 평택 등 국내 반도체공장에 2021년까지 40조 원 가까운 시설투자를 벌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대부분 메모리반도체인 3D낸드의 생산확대에 사용된다.
하지만 정 부사장은 “화성 반도체사업장에 계획된 6조 원의 투자 가운데 일부는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 증설에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적극적인 사업확대를 예고한 것을 볼 때 위탁생산분야에 들이는 투자비중이 예상보다 높을 공산이 크다.
|
|
|
▲ 미국 텍사스의 삼성전자 반도체 위탁생산공장. |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에도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공장을 갖추고 있는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하지만 이른 시일에 미국에도 대규모 추가 투자계획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에만 시설투자를 집중할 경우 위탁생산규모를 확대하는 데 물리적인 한계를 맞을 공산이 커 미국에도 수조 원대의 시설투자를 동시에 집행해야 증설속도를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미국공장에 올해까지 1조 원, 2020년까지 1조7천억 원 정도의 투자를 예고했는데 최근 조직개편 등으로 반도체 위탁생산사업 확대를 추진하는 만큼 규모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수경기 활성화를 목표로 해외기업들의 현지 생산투자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가 증설투자로 미국정부와 협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노릴 수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공장에 시설투자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고객사의 수요에 맞춰 한국과 미국의 반도체 위탁생산공장을 유동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