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인스타그램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 "핵심만 남기고 모두 버려라"

▲ 단순함과 감성을 내세워 사진 공유 플랫폼 인스타그램을 만든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 2012년 페이스북(현 메타)은 인스타그램을 10억 달러에 인수했다. 2018년까지 인스타그램 CEO로 일했던 시스트롬은 그해 페이스북을 떠났다.  <케빈 시스트롬 인스타그램>

[비즈니스포스트] 핵심만 남기고 모두 버려라. 

케빈 시스트롬(Kevin Systrom)이 인스타그램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고수했던 원칙이다. 시스템(system)이라는 철자를 닮은 이름의 사내, 시스트롬은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걷어냈다. 그러곤 딱 ‘본질’만 남긴 플랫폼을 만들었다. 

2025년 현재, 인스타그램의 월간 활성 사용자는 30억 명에 달한다.(로이터 9월24일 보도) 이는 인스타그램이 단순히 ‘사진 공유 앱’을 넘어 전 세계인들의 디지털 일상과 소통의 중심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출시 15년이 지난 지금도 인스타그램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문제는 규모가 커질수록 처음의 단순함과 감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현재의 SNS 생태계는 ‘과잉 복잡성의 시대’를 맞이했다. AI 추천 피드, 알고리즘 노출, 광고, 쇼핑, 쇼츠와 릴스 등 여러 요소가 뒤엉켜 있다. 플랫폼은 점점 무거워지고, 기능은 끝없이 늘어난다. 

필자는 이런 복잡성(complexity) 속에서 인스타그램 공동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41세, 1983년생)을 다시 바라보려 한다. 시스트롬은 과거의 창업자가 아니라, 지금의 플랫폼 시대를 해석하는 렌즈라 할 수 있다. 

사람은 필요 없는 것을 품고 산다.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시스템에서도 그렇다.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붙잡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시스트롬은 그런 것들을 하나씩 잘라냈다. 단순함이야말로 최고의 경쟁력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스트롬의 단순함(심플함) 가치, 다시 말해 ‘하나에 집중하기 위해 아홉을 버리는 선택’은 플랫폼의 미래를 생각하는 리더들에게 필요한 스토리임에 틀림없다. 

인스타그램의 씨앗은 스탠포드대에서 뿌려졌다. 경영 과학 및 공학을 전공한 시스트롬은 어릴 적부터 사진광이었다. 여가 시간에는 사교 클럽 회원들을 위한 사진 공유 사이트를 만들었다. 

일부 스타트업의 성공에서 보듯, 시스트롬은 팔로알토 캠퍼스에서 기술과 벤처 캐피탈의 결합을 목도했다. 그 역시 스탠포드 프로그램을 통해 벤처 캐피탈로부터 창업 종잣돈을 투자 받았다.  

시스트롬의 철학은 스탠퍼드가 아니라 이탈리아 피렌체의 골목에서 시작됐다. 3학년 무렵, 교환학생으로 사진을 공부하러 떠났다. 그는 교수에게 값비싼 전문가용 카메라를 자랑하듯 내밀었다. 하지만 교수는 고개를 저으며 3~4달러짜리 값싼 홀가(Holga) 필름 카메라를 건넸다.

“이걸 써라.”

시스트롬은 장난감 같은 그 카메라를 들고 피렌체 골목을 누볐다. 사진을 잘 찍는 법을 배우는 대신 다르게 보는 법을 배웠다. 정교한 기능보다 본질을 보는 능력이 더 강력하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을 다른 렌즈로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인스타그램의 시작이었어요.”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인스타그램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 "핵심만 남기고 모두 버려라"

▲ 인스타그램은 개인의 일상을 기록하는 공간에서 사회적 트렌드가 생산되고 확산되는 ‘감성 기반의 글로벌 공공 영역’으로 확장됐다. <메타>

스탠포드 재학 시절, 시스트롬은 마크 저커버그로부터 페이스북 합류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훗날 운명적인 만남을 예고라도 하듯이. 졸업 후 들어간 혁신적인 회사 구글조차 따분하게 느껴졌다. 3년 만에 회사를 떠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시스트롬은 한 강연에서 자신의 인생 전환기를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드는 것”(jumping into a cold ocean)에 비유하기도 했다. 

유기농 점심 식사, 무료 출퇴근 셔틀버스, 최첨단 연구 자재가 갖춰진 구글 캠퍼스 생활은 인스타그램을 구상하던 어둡고 좁은 샌프란시스코의 원룸 공간과는 극명하게 대조적이었다. 

어느 날 밤, 새벽 1시쯤이었다고 한다. 시스트롬은 옆에 있던 브라질 출신 동업자 마이크 크리거를 힐끗 쳐다보았다. 크리거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우리 사무실은 정말 추웠어요.”

시스트롬은 앱 개발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버번 위스키의 이름을 따서 버븐(Burbn)이라고 명명했다. 체크인, 사진, 게임 등 여러 기능이 들어간 앱이었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래서 둘은 결정을 내렸다. “다 지우자. 딱 하나만 남기자”였다. 사진 공유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다. 복잡한 기능을 삭제한 순간, 인스타그램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해변 산책 중 떠오른 필터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였다. 여자 친구가 “사진이 더 멋져 보이면 좋겠다”고 말했고, 시스트롬은 그 자리에서 X-Pro II 필터를 구상했다. 필터는 사진을 잘 찍지 못하는 사용자들의 불안을 없애 준 ‘정서적 기술’이었던 셈이다. 

2010년 당시 힙스타매틱(Hipstamatic) 같은 사진 공유 앱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앱 자체의 기능이 복잡했다. 인스타그램은 원터치 필터와 간단한 인터페이스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복잡함을 없애자 시장은 단번에 움직였다.

인스턴트(Instant)와 텔레그램(Telegram)의 합성어인 인스타그램이 세상에 나온 건 2010년 10월이다. 출시되자 첫 24시간 만에 2만 5천 명이 넘는 사용자가 앱을 다운로드했다. 서버가 마비됐다. 출시 한 달 만에 사용자 수가 100만 명으로, 9개월 후에는 70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1년 반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012년 4월, 페이스북(현 메타)이 10억 ​​달러라는 믿기지 않는 금액으로 인스타그램을 인수했던 것이다. 당시 인스타그램의 직원은 고작 14명, 매출도 없고, 수익도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인 일이었다. 

버려진 기능의 숫자만큼, 인스타그램의 가치는 커졌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인스타그램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 "핵심만 남기고 모두 버려라"

▲ 2016년 2월 26일 로마 바티칸 궁전에서 당시 교황 프란치스코를 만난 케빈 시스트롬. 한 달 뒤 교황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첫 게시물을 올렸다. <케빈 시스트롬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 또 다른 역사적 순간이 찾아온 건 2016년 2월 26일이다. 그날 시스트롬은 로마 바티칸 궁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 서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권위의 상징과 디지털 기술자의 만남이었다. 

시스트롬은 한 장의 사진이 언어와 국경을 넘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교황에게 건넸다. 교황은 그 진정성에 응답했다.

한 달 뒤인 3월 19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었다. 첫 게시물은 단순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진 한 장과 ‘Pray for me’라는 짧은 문장. 단 세 단어가 8개 언어로 올라왔다. 교황의 이 게시물은 12시간 만에 100만 명이 팔로우했다. 

교황 사례에서 보듯, 사람을 움직이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감성’이다. 시스트롬은 그 감성을 단순함이라는 그릇에 담아냈다. 인스타그램의 성공 공식은 한마디로 ‘감성×단순성’이었다.

그랬다. 시스트롬이 인스타그램에 심어놓은 것은 기술이 아니라 ‘감성의 경제’였다. 아쉽게도 2018년까지 인스타그램 CEO로 일했던 그는 그해 페이스북을 떠났다. 

그가 남았든 떠났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필자가 케빈 시스트롬을 재소환한 건 기업들이 때론 ‘감성의 경쟁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통찰을 전하기 위해서다. 케빈 시스트롬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과하게 하지 마세요. 제품 성공에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모두 잘라내세요. 과하면 방해가 됩니다.”(포브스 인터뷰)

분명 그랬다. 세상을 바꾼 것은 하나를 남기기 위해 아홉을 버린 결단, 바로 그것이었다. 이재우 경영어록서 ‘일언천금’ 저자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글로벌 경영인들의 어록을 모은 '일언천금'의 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