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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에 입사한 지 5년가량,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는 3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유통과 화학, 식품, 호텔 등 주요 사업군을 넘나드는 광폭 행보로 롯데그룹을 이끌 차기 지도자라는 인식을 뿌리부터 심고 있다.
신유열 실장의 움직임을 볼 때 신동빈 회장의 뒤를 이어 조만간 경영 전면에서 활약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조만간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롯데그룹 정기 임원인사의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신유열 실장의 역할 확대 여부다.
신 실장은 최근 수년 사이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했다. 2022년 말 상무로, 2023년 말 전무로, 2024년 말 부사장에 오르며 1년마다 명함을 새로 팠다.
신 실장과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재벌기업 후계자들이 임원의 각 직급마다 최소 2~3년씩 머무르며 후계자 수업을 받은 점을 감안할 때 신 실장의 승진은 사실상 오너경영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신 실장의 승진가도를 두고 신동빈 회장이 다소 조급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신 실장이 상대적으로 늦었다고 볼 수 있는 35살이 되어서야 롯데그룹에서 행보를 시작한 탓에 경영수업의 속도도 높일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시각이 힘을 얻었다.
직급뿐만 아니라 역할도 꾸준히 강화됐다.
신 실장은 2023년 6월 롯데파이낸셜 대표이사에 올랐으며 그해 12월에는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성장실장에 발탁됐다. 롯데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오너경영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때부터다. 2024년 2월에는 롯데바이오로직스 사내이사에 선임됐으며 6월에는 일본 롯데홀딩스 사내이사에도 올랐다.
이런 배경을 감안할 때 신 실장과 관련한 인사는 롯데그룹 안팎에서 늘 1순위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처럼 단순히 직급만 높아지는 승진 인사가 날 수도 있지만 그룹에서 존재감을 더 확대할 수 있는 직책을 추가로 부여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 실장이 이미 롯데그룹의 주요 사업을 돌아가며 챙겨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관식은 시기의 문제’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신 실장은 롯데그룹 계열사의 위상을 가리지 않고 주요 행사라면 대부분 직접 방문하며 둘러보는 기조를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모습을 드러낸 계열사는 바로 롯데케미칼이다. 6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롯데케미칼의 ‘라인프로젝트’ 준공식에 신동빈 회장과 함께 참석했다.
10월에도 신 회장과 함께 미국으로 날아가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생산시설을 점검하기도 했고 9월에는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인재개발원 오산캠퍼스 등에서 열린 핵심 인재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해 임직원들을 직접 격려했다.
▲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은 유통과 화학, 식품, 호텔 등 주요 계열사를 가리지 않고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후계자라는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여겨진다. 사진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경.
8월에는 오너 일가가 거의 찾지 않았던 계열사 롯데GRS의 행사에 두 차례나 참석하는 ‘파격 행보’도 보였다. 6월에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호텔롯데 호텔사업부의 새 호텔 개관 행사에 참여해 테이프 커팅식을 함께 하는 모습도 보였다.
배터리 전문 전시에 참석해 롯데그룹이 새 먹거리로 점찍고 육성하고 있는 차세대 배터리와 소재 기술을 살피는 것도 그의 몫이었으며 2월에는 롯데웰푸드의 인도 푸네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하며 제과사업에 힘을 싣는 모습도 연출했다.
이밖에도 틈만 나면 롯데백화점이나 롯데아울렛, 롯데마트 등 유통 시설을 찾아 현장경영을 한다는 것이 롯데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신 실장의 이러한 적극적 외부 행보는 사실 롯데그룹 내부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신 실장이 2022년 8월 신동빈 회장의 동남아시아 출장길에 동행하면서 공개 행보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좀처럼 외부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신 회장과 마찬가지로 경영보폭을 확대하는 데 조심스럽게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수년 사이 보여준 움직임은 오히려 명실상부한 오너3세 경영인으로서 그룹 장악력을 강하게 틀어쥐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롯데그룹 안팎에서 나온다.
신 실장이 롯데그룹을 대표하는 얼굴로 떠오를 시기가 머지않았음을 인정하면서도 일각에서는 그의 경영능력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빠른 속도로 승진을 이어왔고 굵직한 조직을 이끄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실제로 의사결정 과정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전략을 제시하는지 등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는 지적이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구체적 수치로 경영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신 실장의 다음 과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