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수입박람회(CIIE)에서 11월6일 방문객이 메르세데스-벤츠가 꾸린 부스를 찾아 차량을 구경하고 있다. <연합뉴스>
테슬라와 GM 등 미국 쪽은 중국 공급망과 이른바 ‘디커플링(분리)’에 적극 나섰지만 독일은 미국과 달리 중국과 깊숙히 얽혀 있기 때문이다.
16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정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독일 국가안보위원회는 지난주 첫 회의에서 연말까지 독일 자동차 업계의 원자재 공급처 다각화 계획을 세우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독일 완성차 기업이 중국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라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독일 정부는 2023년 7월13일 발표한 대중 전략에서도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독일 자동차 업체가 중국 공급망과 긴밀히 얽혀 있어 이러한 목표의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독일 씽크탱크 메르카토르중국학연구소는 지난해 독일 자동차 업계의 대중국 투자가 2023년보다 69% 증가한 42억 유로(약 7조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BMW가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 38억 유로(약 6조3700억 원) 규모의 배터리 연구개발(R&D) 단지를 구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메르세데스-벤츠는 최근 연례 전략회의 장소를 베이징으로 바꾸고 중국 전용 전기차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폴크스바겐 또한 엑스펑을 비롯한 중국 전기차 업체 다수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독일 당국이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외쳐도 이미 자동차 기업은 중국에 깊이 뿌리를 내려 당국의 전략을 시행하기 어려운 것이다.
독일이 탈중국 정책에 의지가 크지 않다는 점도 공급망 단절에 어려움을 키운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중국산 저가 부품을 정책적으로 막으면 기업 이윤은 줄고 소비자 물가 상승이 불가피해 선택에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익명의 소식통 발언을 인용해 “독일이 비공개적으로 회의를 열고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 논의한다”면서도 “누구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 중국이 인수한 자동차용 반도체 업체 넥스페리아의 독일 함부르크 공장에서 2024년 6월27일 한 직원이 웨이퍼가 담긴 상자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테슬라와 GM은 올해 하반기 협력사에게 중국산 부품을 전면 배제하도록 요구하며 공급망 완전 분리에 시동을 걸었다.
테슬라는 1~2년 안에, GM은 2027년까지 공급망을 비중국 부품으로 전환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관세를 높여 미국 내 공급망을 새로 구축할 필요가 커졌다. 여기에 테슬라와 GM은 독일 업체만큼 중국과 얽혀 있지 않아 이런 적극적 탈중국 행보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두 나라 정부의 탈중국 전략의 이유와 강도도 다르다. 미국은 중국 공급망 분리를 ‘안보 대결’ 차원에서 바라보지만 독일은 공급망을 지나치게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위험 분산 등을 이유로 의존도를 줄이려는 성격이 강하다.
블룸버그는 “독일 (자동차 업계는) 생산 거점을 중국으로 다수 옮겼다”며 “이에 저렴한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독일 자동차 산업이 중국발 변수에 취약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최근 중국 정부가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인 넥스페리아의 중국 내 공장 반도체 수출을 통제해 폴크스바겐과 BMW 등 자동차 제조사에 공급망 차질로 이어졌는데 이러한 사례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뜻이다.
독일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경쟁에서 고전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수급이 불안해 실적이 후퇴하고 있는데 중국발 공급망에서 변수가 생긴다면 부담은 더 커진다.
요컨대 BMW와 폴크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 독일 자동차 업체가 중국 공급망에 과도한 의존하고 있어 이를 줄이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럽 자동차 공급망 단체인 CLEPA의 마티아스 징크 회장은 블룸버그 통해 “공급망 다각화에 최소 3년~5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