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성공 비결은 '한국기업 차별 정책' 분석, 현지 경쟁사에 반사이익

▲ 중국 정부가 현지에 진출한 한국 배터리 업체의 수주를 어렵도록 하는 '화이트리스트' 정책에 힘입어 자국 기업 육성에 성과를 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 닝더에 위치한 CATL 배터리 공장.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이 초반부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한국 기업들의 시장 진출을 어렵도록 하는 정책 덕분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CATL을 비롯한 중국 업체들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수직계열화 효과를 바탕으로 급성장해 전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선두 지위를 더욱 굳혀나가고 있다.

13일(현지시각) 영국 BBC는 “중국은 2005년까지만 해도 단 두 곳의 배터리 제조사를 보유하고 있었다”며 “그러나 약 20년 만에 세계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BBC는 중국이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지금과 같이 압도적 선두 지위를 차지하게 된 배경으로 정부 차원에서 단계적으로 추진된 산업 육성 전략을 꼽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집계를 보면 CATL과 BYD는 지난해 전 세계 리튬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 및 2위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중국 제조사를 모두 합치면 점유율은 약 75%에 이른다.

중국 산업정책 전문 분석가 셰옌메이는 BBC에 “현지 기업을 보호하고 배터리 공급망 전반을 육성하려는 중국 정부의 지원이 이러한 기업들에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한 전기차 생산 의무화와 국가 차원의 충전 인프라 구축, 친환경차 소비자 대상 보조금 등 정책이 복합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BBC는 중국 정부가 2006년부터 15년에 걸쳐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 산업을 육성하는 계획을 수립하면서 관련 정책이 점차 강화돼 왔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값싼 인건비가 아닌 기술적 우위를 장점으로 삼겠다는 목표를 앞세워 자국 기업의 전기차 및 배터리 기술 개발을 지원해 왔다.

2013년부터는 중국 소비자들에 구매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이 도입되면서 전기차 보급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BBC에 따르면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약 8년에 걸쳐 친환경차 구매자에 제공한 세제혜택 규모는 2천억 위안(약 41조 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을 비롯한 주요 경쟁사에 불이익을 주는 정책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중국 배터리 성공 비결은 '한국기업 차별 정책' 분석, 현지 경쟁사에 반사이익

▲ 중국 BYD '블레이드' 전기차 배터리 홍보용 이미지.


셰옌메이 분석가는 중국 정부가 현지 배터리 제조사를 위해 거대한 내수시장을 해외 기업으로부터 차단하는 규정을 도입하며 한국 기업들을 배제했다고 전했다.

전기차 제조사들이 소비자 보조금을 받으려면 중국 정부에서 선정한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된 공급사의 배터리를 사용해야 했는데 해당되는 57곳이 모두 중국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규정은 사실상 중국 배터리 업체만 해당되도록 설계되었고 이에 따라 중국에 공장을 건설중이던 한국 기업들이 뒤늦게 이를 알게 됐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결국 한국산 배터리를 도입하려면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도 다급하게 자국 기업과 협력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자연히 현지 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한국 기업의 타격이 중국 경쟁사들에는 고스란히 반사이익으로 돌아간 셈이다.

BBC는 중국 정부의 정책 이외에 현지 배터리 기업들의 역량도 성공 비결에 포함된다고 평가했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핵심 요소인 대규모 생산과 비용 통제에 중국 업체들이 우수한 역량을 보이면서 원가 절감에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특히 CATL과 BYD 등 상위 기업들은 전기차 배터리 주요 부품 및 소재 공급사를 직접 소유해 수직계열화 효과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더욱 높였다.

수익성 개선에 따른 연구개발 투자 증가는 자연히 배터리 기술 강화로도 이어졌다.

BBC는 BYD의 대표 제품인 ‘블레이드’ 배터리를 예시로 들었다. 리튬인산철(LFP) 기반 배터리의 단점인 부피와 안전성, 성능 등을 모두 이전 세대보다 높인 제품이다.

CATL은 2만 명, BYD의 배터리 사업 부문은 1만 명 이상의 기술 엔지니어를 고용하고 있다는 점도 이들의 기술 역량을 보여주는 근거로 제시됐다.

결국 BBC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른 국가가 중국 배터리 기술 우위를 따라잡기는 매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비영리 연구기관 랜드는 BBC에 “중국산 배터리는 저렴하고 성능이 우수한 데다 공급 물량도 충분하다”며 “중국 배터리 업계의 성공을 따라잡는 일은 이미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