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어비스 '퍼펙트한 게임 내놓고 싶다', 붉은사막 연기는 이유있는 고집인가

김대일 펄어비스 창업주 겸 이사회 의장은 게임의 '완성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여러차례 강조해왔다. 사진은 사무실에서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김대일 의장.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게임 파는 데 시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언젠가는 ‘아! 퍼펙트하다!’ 이런 상태에서 내놓고 싶다.”

김대일 펄어비스 창업주 겸 이사회 의장이 15년 전 한 국내 게임전문 언론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다.

‘완성도 우선’의 신념은 시장의 속도와 자주 충돌한다. 김대일 펄어비스 창업주 겸 이사회 의장은 오랜 시간 같은 답을 제시해왔다. 개발자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고, 출시 시기보다 완성도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공개됐을 당시 2021년 출시를 내걸었던 붉은사막은 무려 6차례의 연기 끝에 2026년 1분기 출시를 앞두고 있다. 김대일 의장은 바로 그 붉은사막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있기도 하다.

◆ “개발자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김대일의 일관된 모토

김대일 의장은 20대에 NHN에서 R2와 릴 온라인을 총괄 개발하며 게임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젊은 천재 개발자라는 이야기를 듣다가 대기업 소속 개발자로서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것은 또다른 MMORPG인 C9(Continent of the ninth)을 출시한 2009년이었다. 

C9은 2009년 대한민국게임대상에서 대상과 기술·창작상(게임그래픽, 게임캐릭터, 게임사운드의 3개 부문)을 휩쓸었으며, 김대일 당시 NHN게임스 실장은 매년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우수개발자상’을 받았다. 역대 최연소 수상이었다. 

김 의장이 이런 영광을 안겨준 NHN을 떠난 이유는 간단하다.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김 의장은 NHN를 나와 펄어비스를 설립했다. 그리고 단 한 편의 게임, ‘검은사막’으로 펄어비스를 국내 메이저 게임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 긴 개발시간과 흥행의 상관관계, 붉은사막은 ‘듀크뉴켐포에버’ 전철 피할 수 있을까

‘붉은사막’은 2019년 지스타(G-STAR)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후 2020년 더게임어워드(TGA)에서 2021년 겨울에 출시하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이유로 출시일은 2022년으로 미뤄졌고, 이후로도 붉은사막은 5번이나 더 출시가 연기됐다. 

시장에서는 붉은사막이 주가 부양용 베이퍼웨어가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베이퍼웨어는 나온다고 말만 무성하고 실제로는 출시되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뜻한다. 

문제는 게임업계에서 ‘베이퍼웨어’란 결국 나온다고 하더라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랜 개발 끝에 출시되더라도 실제 모습이 초기에 약속한 것과 달라지거나, 기획과 기술이 시장 트렌드와 어긋나는 경우가 흔하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명작 1인칭슈팅게임(FPS) 시리즈인 ‘듀크뉴켐’ 시리즈의 마지막 정규 타이틀인 ‘듀크 뉴켐 포에버’다. ‘듀크뉴켐3D’의 후속작으로 1997년 4월 제작이 발표됐던 이 게임은 최초 제작 발표로부터 무려 14년이 지난 2011년 6월 발매됐다. 

그렇게 긴 기다림 끝에 출시된 듀크뉴켐포에버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쪽박’이었다. PC버전 기준 메타크리틱 평론가 점수는 100점 만점에 54점, 유저 평점은 10점 만점에 5.8점을 받았으며 끌어올려진 기대감 때문에 출시 첫 주에는 20만 장을 팔았지만 이후로는 인기가 시들해졌다. 

물론 반대 사례도 있다.

일본의 유명 게임개발사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판타지15는 2006년 처음으로 개발이 발표된 후 10년이 지난 2016년 11월에야 게임이 출시됐지만, 출시 이후 ‘시리즈 사상 최대 규모의 블록버스터’라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적으로 1천만 장을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PC버전의 메타크리틱 평론가 점수는 85점, 유저 평점은 8.4점이었다. 

현재 ‘붉은사막’에도 베이퍼웨어와 관련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초창기 기획이 낡았을지 모른다는 걱정, 개발 방향이 흔들렸을 거라는 추측 등이 우려의 핵심이다. 2025년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다시 한 번 출시 연기를 발표한 직후 주가가 무려 24.17% 급락한 것은 시장의 우려를 잘 보여준다.
 
펄어비스 '퍼펙트한 게임 내놓고 싶다', 붉은사막 연기는 이유있는 고집인가

▲ 붉은사막 실제 플레이 화면. <붉은사막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게임스컴을 기점으로 달라지는 분위기

하지만 베이퍼웨어에 대한 우려는 곧 사라졌다. 출시 연기 발표 직후인 2025년 8월20일 열린 독일 최대의 게임쇼 ‘게임스컴 2025’에서는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붉은사막은 게임스컴 2025에 출품된 한국 게임 중 유일하게 △최고의 비주얼(Best Visuals) △모스트 에픽(Most Epic) △최고의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게임(Best Sony PlayStation Game) △최고의 엑스박스 게임(Best Microsoft Xbox Game) 등 4개 부문 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수상 실패 이후 펄어비스 주가의 흐름이다. 펄어비스 주가는 게임스컴 4개 부문에 수상 후보로 올랐다는 사실이 전해진 8월19일 7.8% 급등했다. 하지만 21일 수상 실패가 시장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2.98% 하락하는 데 그쳤다. 

이후로도 펄어비스 주가는 조금씩이지만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게임스컴에서 현장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가 시장 전반으로 공유됐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27일에는 글로벌 게임 유통기업 플레이온과 붉은사막 글로벌 유통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펄어비스 주가가 장중 5% 이상 상승하기도 했다.

◆ 붉은사막의 거듭된 ‘연기’는 ‘장인정신’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김대일 의장은 월급쟁이 게임 개발자 시절부터 줄기차게 개발자가 원하는 게임을 완성도 있게 출시하고 싶다는 뜻을 보여왔다. 

붉은사막의 거듭된 발매 연기를 비판하는 여론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기대감을 놓지 않고 있는 게임 이용자들이 많은 이유다. 김대일 의장이 말한 “아! 퍼펙트하다!”를 향한 장인정신일 가능성을 아직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효진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펄어비스의 붉은사막 출시 연기와 관련해 “지연은 아쉬우나 이유가 이해 가능하다면 한 분기 더 못 기다릴 이유는 없다”라며 “다만 반복된 지연이 낳은 업보가 투자자들의 화를 돋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붉은사막을 놓고 해외 유저들 사이에서도 ‘발매 연기에 지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지만 해외 주요 웹진들의 평가는 나쁘지 않은 편”이라며 “공개된 정보로만 볼 때는 흥행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