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영준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사장이 정부의 강도 높은 석유화학산업 자구방안 마련 요구에 대응하는데 고심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나프타분해시설(NCC)의 생산능력 조정을 놓고 충남 대산의 생산시설 통합 관련 논의에는 탄력이 붙을 수 있지만 전남 여수 NCC와 관련해서는 해법을 찾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케미칼 정부발 구조조정에 대산 NCC 통합 탄력 붙을 듯, 이영준 여수 NCC는 만만치 않아

▲ 이영준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사장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 요구에 고심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1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석유화학 사업재편을 위한 간담회’에 참석해 “지금은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때로 줄을 묶고 함께 건너면 정부가 손을 잡아 주겠지만 홀로 걸어가면 얼음이 깨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부위원장의 발언은 전날 정부가 내놓은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 방향과 관련해 금융지원을 논의하며 석유화학 기업들에 적극적 자구방안 마련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마련한 지원의 원칙은 △3개 석유화학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구조개편 동시 추진 △충분한 자구노력 및 타당성 있는 사업재편 계획 마련 △정부의 종합지원 패키지 마련 등이다. 
연간 생산량 최대 370만 톤 감축이라는 목표도 제시됐다.

석유화학업계에서는 정부의 구조개편 방향 및 원칙을 놓고 구체적 대책이나 지원책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정부도 뾰족한 대책이 없으니 업계가 알아서 먼저 대책을 마련해 오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선 자구노력, 후 정부지원’이라는 구조개편 방향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그동안 문제를 직시하지 못했다”며 “글로벌 공급과잉이 예고됐음에도 과거 호황에 취해 오히려 설비를 증설한 데다 고부가 전환까지 실기하며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구 부총리는 “업계가 제출한 계획이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한 R&D 지원, 규제 완화, 금융, 세제 등 종합대책을 마련해 지원할 것”이라며 “반면 사업재편을 미루거나 무임승차하려는 기업에는 정부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등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 부위원장 역시 이날 간담회에서 석유화학업계의 비판과 관련해 “물에 빠지려는 사람을 구해주려고 하는데 보따리부터 내놓으라는 격으로 안일한 인식에 정부로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같은 구조개편 방향이 이영준 사장에게는 대산 NCC 통폐합 논의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물꼬를 터 준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국내 시장 상황을 보면 석유화학이나 정유 산업은 소수의 주요 기업만이 존재하는 과점시장으로 볼 수 있다. 이들 기업 사이에 생산설비 통폐합 혹은 생산량 조절 등을 논의하고 실행하면 독과점 관련 규제가 문제 될 가능성이 커 관련 논의에 부담이 크다.

롯데케미칼은 HD현대와 대산의 NCC 설비를 놓고 통합 운영 등을 논의하고 있다. 대산에서 롯데케미칼은 110만 톤 규모, HD현대케미칼은 85만 톤 규모의 NCC를 운영하고 있으며 HD현대오일뱅크는 별도의 정유 시설도 보유하고 있다.
 
롯데케미칼 정부발 구조조정에 대산 NCC 통합 탄력 붙을 듯, 이영준 여수 NCC는 만만치 않아

▲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의 모습. <롯데케미칼>


롯데케미칼과 HD현대 사이 NCC 관련 논의는 석유화학 기업과 정유기업 사이 논의라는 점에서 현재까지 거론되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 방식으로 꼽힌다. 다만 논의 사실이 알려진 6월 이후 현재까지 두 기업 사이에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별다른 진전을 보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HD현대와 진행 중인 논의의 진행상황과 관련해 현재까지 알릴 만한 진전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들 사이 자구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를 독촉하고 있는 만큼 당장 구체적으로 규제 완화가 정부의 지원 대책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후 정부의 법적 제재 가능성에 부담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을 비롯해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지난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참석 하에 ‘석유화학산업 재도약을 위한 산업계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자구대책 마련 시점을 놓고 정부에서 올해 연말까지라는 기한을 제시한 점을 고려하면 이 사장으로서는 HD현대와 논의에 속도를 내는 데 긍정적 여건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사장은 여수의 NCC 설비를 놓고는 대응책 마련에 난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여수는 가장 규모가 큰 석유화학 산업단지로 생산량 감축에 부담이 크지만 그만큼 설비 규모도 크고 많은 기업들 사이 이해관계가 얽혀 설비 통폐합 등 논의가 진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3곳 석유화학 단지 NCC의 연간 생산량 규모를 보면 여수는 627만 톤, 대산은 478톤, 울산은 176만 톤 등이다. 사실상 여수에서의 구조조정이 전체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성패를 좌우할 상황인 셈이다.

여수에서 228만5000천 톤 규모의 NCC를 운영하는 여천NCC는 자금지원 문제를 놓고 공동운영 기업인 한화와 DL이 갈등을 겪고 있다. LG화학은 여수 내 NCC 설비의 일부를 놓고 2023년부터 매각을 추진해 왔지만 현재까지 이렇다할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롯데케미칼 역시 여수에서 123만 톤의 대규모 NCC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 사장으로서는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낼 만한 자구방안 마련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여수 NCC 등의 구조조정과 관련해 아직은 구체적으로 대책이 마련되지는 않았다”며 “정부가 구체적 목표와 시한을 제시한 만큼 그에 맞춰 자구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