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정애 LG생활건강 대표이사가 내년 3월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다. <그래픽 씨저널>
이 대표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실력’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발탁한 첫 여성 대표이사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부 출신 대표로 회사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조직을 이끌 수 있는 인물로도 꼽혔다.
'나를 위한 일'을 강조하며 수평적이고 실용적인 조직 문화를 구축하려 노력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대표의 경영 성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나뉘고 있다. 중국시장 수요 둔화의 상황 속에서도 2024년 전반적으로 실적을 개선했다.
다만 올해 다시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내림세를 겪으며 실적 면에서의 부진을 면치 못했다는 업계 시선도 나온다.
이 대표는 과연 재신임을 받을 수 있을까?
◆ 이정애 대표의 상징성, ‘능력주의 인사’로 최초 여성 대표이사로 승진
이정애 대표의 발탁은 공채 출신 대표라는 의미를 넘어 LG그룹의 변화를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대표는 오너 일가를 제외한 첫 여성 전문 대표이사라는 점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추구하는 세대교체와 혁신의 상징적 인물로 꼽혔다.
구광모 회장이 취임한 2018년부터 LG그룹은 세대교체를 내세우며 학연과 지연, 성별에 얽매이지 않는 혁신적 인사를 단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이정애 대표가 2021년 LG생활건강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LG그룹을 통틀어 최초의 여성 대표이사 타이틀을 갖게 됐다.
18년 동안이나 LG생활건강을 책임지던 차석용 대표이사 부회장의 후임 자리였기에 업계의 주목을 더욱 받았다.
차 부회장의 재임 동안에 LG생활건강은 2021년까지 계속해서 매출을 경신해 ‘차석용 효과’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그러나 LG생활건강은 2020년부터 연쇄적으로 시장 변화를 겪으며 실적 증가가 한풀 꺾였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이 주요 도시를 봉쇄하면서 수요가 둔화됐고,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구 회장의 체질 개선 의지는 이정애 대표를 포함한 ‘이례적 인사’에서도 드러났다.
전체 승진자 가운데 70% 이상을 신규 임원으로 채우면서 인사개혁을 통한 체질 개선의 의지를 보였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외부인재를 적극 영업하기도 했다.
구 회장은 2022년 사업보고회에서도 “상황이 어렵더라도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재 발굴과 육성 등에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며 능력 위주의 인재 선발에 의지를 보였다.
구 회장이 이 시기에 이정애 대표에게 LG생활건강을 맡긴 것도 ‘능력주의 인사’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1963년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공채로 입사해 LG화학부터 LG생활건강, 코카콜라음료 등 3대 핵심 사업부를 모두 거치며 전문성을 쌓았다.
◆ 중국시장 부진 딛고 실적 개선하며 미래 포석 다져
이정애 대표의 가장 큰 성과로는 중국시장의 수요 둔화 속에서도 지난해 LG생활건강의 실적을 회복시켰다는 점이 꼽힌다.
이 대표는 프리미엄 화장품 브랜드 ‘더후’의 리뉴얼과 적극적 마케팅으로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며 지난해 1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으로 매출 증가를 이끌었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매출 1조6099억 원, 영업이익 434억 원으로 전년보다 매출은 2.7% 늘었고 영업이익은 20.7% 줄었다.
매출 증가 요인으로는 중국에서 ‘더후’가 브랜드 입지를 강화하며 실적을 올렸다는 점이 꼽혔다.
뷰티부문에서는 같은 기간 매출 6994억 원, 영업이익 110억 원을 내 전년보다 각각 5.4%, 50.3% 증가했다.
북미사업 확장을 위해 미국 화장품 기업 더크렘샵을 인수하고 글로벌 기업출신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해외시장 다변화에 주력한 점도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이 대표는 미주사업총괄에 외부인사인 문혜영 부사장을 선임했다.
문 부사장은 미국 스타벅스에서 14년 동안 전략과 마케팅, 제품관리 등 핵심 사업을 경험한 뒤 아마존에서 마케팅을 총괄하며 현지에서 역량을 키웠던 인물로 알려졌다.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도 업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자사주 소각과 배당성향 상향조정, 중간배당 도입 등을 포함한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3년 안에 보통주 95만8412주와 우선주 3438주를 모두 소각하고, 배당성향을 평균 20%대에서 30%대로 올려 잡겠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1년마다 중간배당도 실시하기로 했다.
이 같은 결정에 따라 LG생활건강은 최근 보통주 31만5738주를 소각했다. 8월29일에는 18일 기준 주주를 대상으로 중간배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 대표의 주주친화적 의사결정은 장기적 관점에서 주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주가를 부양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상생 노력에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2023년 7월에는 가맹점과의 계약을 ‘물품공급계약’으로 바꾸면서 점주들이 경쟁사의 제품들도 함께 취급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할인행사 비용 지원 같은 계약 당시의 공급조건은 그대로 유지했고 사업철수를 원하는 점주를 대상으로 지원제도와 보상방안도 마련해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상품성이 없는 ‘못난이 농작물’을 사용한 화장품 브랜드 ‘어글리러블리’도 선보였다.
이 브랜드의 제품은 한국 비건인증원에서 친환경 식물성 제품으로 인증받았고 포장재도 친환경 원료를 사용했다.
이러한 점에서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에 앞장섰다는 긍정적인 의견이 나온다.
◆ 구조조정으로 비용효율화 시도했으나 올해 실적부진 면치 못해
이 대표는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과 구조조정 등의 측면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한다.
LG생활건강 실적은 올해 다시 내림세를 보였다. 올해 들어 매 분기 연결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하고 있다.
1분기에는 연결기준 매출 1조6979억 원, 영업이익 142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8%, 5.47% 줄었다.
2분기에도 연결기준 매출 1조6049억 원, 영업이익 54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각각 8.8%, 65.4% 감소했다.
주력사업인 뷰티부문 영업이익이 가장 크게 감소하며 2분기 2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기도 했다.
뷰티부문은 1분기 매출 7081억 원, 영업이익 58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11.2% 줄었다.
2분기에는 매출 6046억 원, 영업손실 163억 원으로 매출은 지난해 2분기보다 19.4%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했다.
LG생활건강 매출은 2021년 8조915억 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을 달성한 뒤 이 대표가 취임한 2022년부터 3년 동안 계속해서 역성장해왔다.
지난해에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반등하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올해 다시 실적 내림세를 겪으면서 재임기간 중의 실적을 두고 부정적 평가가 모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2023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도 했다.
1989년 공채로 입사해 대표 자리까지 오른 인물인 만큼 그 결정에 배신감을 느낀 직원들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취임한 뒤 처음으로 임직원과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진정성 있는 대화’를 강조했지만 전혀 다른 행보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 회사 실적 부진을 이유로 직원 성과급은 100%로, 성과급의 기준이 되는 기본급은 계약연봉의 20분의 1 수준으로 책정돼 내부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바로 전년도인 2022년 성과급이 460%로 책정됐던 것과 비교하면 반의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안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