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관세 인하 '절반의 성공', 현대차그룹 정의선 일본과 경쟁 해법 선택의 시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한국 미국 관세협상 타결 이후 일본 자동차와 경쟁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고민이 미국과의 자동차 관세 협상 타결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관세가 15%로 확정되면서 기존보다 10%포인트 낮아지기는 했지만, 일본과 유럽연합(EU)도 같은 15% 관세를 부과받으면서 미국 자동차 시장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EU와 동일한 관세이지만, 그동안 그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관세 15% 부과는 상당한 영업손실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또 일본은 그동안 미국 자동차 수출 때 관세 2.5%를 부과받고 있었는데, 이번에 관세가 동일해지면서 일본 자동차 기업들과 미국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현대차그룹에는 상대적으로 다소 불리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31일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차그룹이 미국 시장에서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기업들과 경쟁하며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데 이번 미국 15% 관세 확정이 결코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관세가 10%포인트 낮아진 것은 불행 중 다행으로 볼 수 있지만, 일본 자동차 기업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경쟁력 약화가 우려될 수 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한국과 일본이 자동차 관세 15%를 동일하게 적용받게 되면서 사실상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현대차그룹보다 관세 측면에서 2.5%포인트 유리한 입장으로 바뀌게 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자동차 관세가 15%로 결정된 것은 사실 아쉬운 부분”이라며 “정부도 12.5%로 낮추고 싶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하한을 15%로 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체 협상 분위기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강하게 얘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미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도요타가 15.3%로 2위, 현대차그룹이 11.0%로 4위, 혼다가 9.1%로 5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5위인 혼다와의 격차를 벌리고 2위인 도요타를 쫓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자동차 관세 인하 '절반의 성공', 현대차그룹 정의선 일본과 경쟁 해법 선택의 시간

▲ 올해 상반기 미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도요타가 15.3%로 2위, 현대자동차그룹이 11.0%로 4위, 혼다가 9.1%로 5위를 기록했다. 이번에 일본과 한국의 미국 자동차 관세가 15%로 동일해지면서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미국 시장에서 일본 완성차 기업들과 더 치열한 판매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모습.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이 지금까지 미국에서 성능 대비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판매 4위에 오른 만큼, 앞으로 가격 경쟁력을 어느 수준까지 확보할 수 있을지가 점유율 확대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대차그룹이 관세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안고 갈 수 밖에 없다"며 "전부 다 떠안고 갈지, 가격 인상으로 일정 부분 손실을 줄일지 사이에서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 회장이 올해 5월 미국 자동차 관세 부과 이후에도 현지에서 판매 가격을 동결하며 오히려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린 만큼, 이번 15% 관세 확정 이후에도 상당 기간 가격을 올리지 않고 판매 점유율을 늘리는 데 집중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 미국 점유율 순위 1위부터 10위 기업 가운데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이어 두번째로 시장 점유율을 가장 많이 올렸다. 상반기 미국 자동차 시장 1위인 GM은 1년 전보다 시장 점유율을 1.5%포인트 늘렸고, 현대차그룹은 0.7%포인트를 늘렸다.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역대 최대치인 11% 점유율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매월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현대차그룹이 일본 완성차 업체들과 사이에서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면 국내 생산 차량의 대미 수출은 감소할텐데, 미국으로 수출하지 않는 물량을 다른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 등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관세 인하에 따른 영업손실이 줄어들게 된 점은 긍정적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2분기 미국 관세로 약 1조610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종전대로 25% 관세가 유지됐을 경우 올해만 모두 9조1천억 원의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관세가 15% 낮아지면서 그룹의 올해 관세에 따른 영업손실은 약 5조 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결과적으로 영업손실을 4조 원 가까이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지 생산을 늘리는 동시에 재료비, 가공비, 생산효율성 등 원가 절감 등으로 수익성 방어 대책을 세우고 있는 만큼 연간 손실은 이보다 더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차 관계자는 “관세 15%가 적용됨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 됐다”며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각적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품질과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 등을 통해 내실을 더 다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