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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개정, 그 후②] 이사 충실의무 확대와 3%룰, 이재용 삼성물산 통한 지배력 제한 가능성](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402/20240207083720_72425.jpg)
▲ 상법 개정을 통한 이사 충실 의무 확대와 3% 룰 도입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물산 지배력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특히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합산해 3%까지만 인정하는 이른바 ‘3% 룰’이 도입되면, 행동주의 펀드 등 외부 주주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추가로,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같은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더욱 까다로운 법적·사회적 검증을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14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이사의 충실 의무가 기존 ‘회사’에서 ‘전체 주주’로 확대되면서, 경제단체들은 삼성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나 계열사 구조 개편 등에서 더욱 신중한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가 소송 남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사진이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질 것이란 주장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올해 2월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상장사의 46.4%는 상법 개정으로 투자와 인수합병(M&A)을 축소할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편은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상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데, 이 때문에 삼성그룹이 미리 바이오 사업 개편에 나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5월 신약개발을 담당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인적분할로 떼어내, 지주회사인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설립하겠다는 사업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분할에 앞서, 외부자문사를 통해 소액투자자의 이해충돌 여부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건영 KB증권 연구원은 “상법 개정으로 계열회사 분할, 합병 등 지배구조 변화를 추진할 때 지배 주주에만 유리한 의사결정은 앞으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 일가에 당장 큰 영향을 미치는 상법 개정 내용은 ‘3% 룰’이다.
3% 룰이란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합산 기준 3%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다. 경영진을 견제·감시하는 사외이사 감사위원 선임에서 최대주주 입김이 대폭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현재 삼성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은 이재용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36.3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의 지분은 19.93%,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6.15%,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은 6.86%다.
이들은 과거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각각 3%의 의결권을 인정받아, 3인 합산으로 12%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상법 개정으로 삼성 오너일가의 전체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지분이 적더라도 삼성물산에 투자한 펀드나 일반주주들이 합세하면, 삼성물산에 최소 1명 이상 감사위원을 넣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감사위원은 이사에게 영업에 관한 보고를 요구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회사와 자회사의 업무·재산 상태를 직접 조사할 수 있는 등 경영권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상법개정, 그 후②] 이사 충실의무 확대와 3%룰, 이재용 삼성물산 통한 지배력 제한 가능성](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4/20250403084624_69136.jpg)
▲ 상법 개정에 따라 기존 기업 지배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이 도입되면, 일각에선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이 해외 행동주의 펀드 등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를 제기하지만, 다른 한켠에선 이번 상법 개정에 집중투표제 등 핵심 조항이 빠지면서 외부 주주의 경영권 개입이 실질적으론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다수의 계열사를 동원해 지분을 나눠 3%룰을 우회하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결국 대주주가 원하는 감사위원을 선임하기 어려워졌고, 행동주의 펀드나 외부 세력의 입김이 강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물산은 과거 여러 차례 해외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2015년 삼성물산 지분 7.23%를 보유하던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공정하지 못하다며 반대한 뒤, 한국 정부와 국제중재 소송까지 벌여 결국 1300억 원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삼성물산은 2024년 3월 주주총회에서 미국과 영국 등 해외 행동주의 헤지펀드 5곳으로부터 5천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비롯해 보통주 1주당 4500원의 배당 등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받기도 했다. 이 때는 ‘표 대결’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패배했다.
여러 사례를 감안했을 때 행동주의 펀드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감사위원을 회사에 넣는다면, 이들의 경영 개입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한 행동주의 펀드는 3% 룰을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 기존 보유 주식을 여러 자회사 펀드로 분할하는 방식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3% 룰은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만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인 만큼, 외부주주가 기업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종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개정된 상법은 사외이사 감사위원도 합산 ‘3% 룰’을 적용키로 해, 대주주 의결권 제한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정됐다”며 “하지만 집중투표제와 같은 소수주주 권한 강화를 위한 핵심 조항이 빠지면서 상법 개정안 실효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