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이 주전산시스템 교체와 연관된 KB금융지주 및 국민은행 임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은 검찰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 사안에 대한 끝까지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가리려고 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의 경징계 결정으로 불안한 동거체제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됐던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 사이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 이건호 “갈 데 까지 가보자” 초강수
국민은행은 26일 KB금융 최고정보책임자(CIO)인 김재열 전무를 비롯해 KB금융 임원 3명을 업무방해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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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호 KB국민은행장 |
김 전무와 함께 검찰에 고발된 두 명은 문윤호 KB금융 IT기획부장과 조근철 국민은행 IT본부장이다.
업무방해죄는 허위사실을 퍼뜨리거나 속임수 및 압력 등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이건호 행장은 지난 25일 국민은행의 조 본부장을 해임했다.
국민은행은 해당임원들이 지난 4월 이사회의 주전산시스템 교체 안건 의결과정에서 업무방해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국민은행은 김 전무 등 3명이 이사회에 보고서를 내면서 유닉스의 잠재적 위험요인과 교체비용 문제를 일부러 빠뜨렸다고 주장한다. 이사회에서 이런 보고서를 근거로 기존 IBM메인프레임 시스템을 유닉스로 바꾸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김 전무 등은 지난 21일 열린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도 위법행위가 인정돼 모두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 행장은 이를 놓고 “잠재적 위험이 있는데도 없다고 거짓말한 것은 명백한 업무방해죄”라며 “3개월 감봉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법당국의 판단을 받아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행장은 “국민은행 전산시스템이 마비되면 국가경제에 혼란이 올 수 있어 문제가 중대하다”며 “이런 위험을 알고도 이사회 보고서에서 누락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행장은 검찰고발과 함께 주전산시스템 교체를 놓고 진행된 과정 전반에 대한 감사를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보고서 조작이 어떤 방법과 무슨 이유로 이뤄졌는지 명백히 밝혀야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며 “외부 전문기관에게 일을 맡겨 사태의 진상을 철저히 드러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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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왼쪽)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오른쪽)이 지난 22일 경기도 가평 백련사에서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 이건호, 독자노선으로 가려고 하나
KB금융 안팎에서 이 행장의 이런 강경태도가 또 다시 KB금융 내부의 갈등을 낳을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KB금융의 한 관계자는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지난 21일 동반 경징계를 받으면서 KB금융이 화합의 기틀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했다”며 “불과 1주일도 지나지 않아 국민은행이 관련자들을 고발하는 등 내분 2라운드가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주 전산기 교체과정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징계결정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이 행장이 검찰 고소 등의 조처를 취한 것은 사실상 임 회장에 대해 도발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에서 이 행장이 이번 건을 계기로 독자노선에 나서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KB금융지주와 관계에서 상하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행장이 금감원 제재 결정 이후 곧바로 국민은행 임원인사와 함께 조직을 개편하는 등의 조처를 취한 것이 바로 이런 이 행장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본다.
이에 대해 이 행장은 이번 고발과 임 회장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행장은 “이번 고발은 임 회장과 갈등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갈등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금융당국의 중징계로 이들의 잘못이 입증된 만큼 사법절차를 밟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은 금융감독위 경징계 결정이 나온 뒤 지난 22일 오후 경기도 가평의 백련사에서 계열사 경영진과 함께 1박2일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며 KB금융의 화합과 경영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템플스테이 당시 이 행장이 행사진행 과정에 대해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며 밤 늦게 백련사를 떠나 화합의 의미는 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행사에서 임 회장만 별도 숙소가 마련되자 이 행장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이 행장과 다른 계열사 대표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지면서 이 행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