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저비용항공사 업계 개편이 임박함에 따라 인수합병(M&A)을 위한 물밑 작업도 활발해지고 있다.
항공사 인수합병에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데다 진행 과정에서 변수가 많은 만큼 각 시장 주체들의 눈치 게임과 수 싸움도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 LCC업계 개편이 임박함에 따라 M&A를 위한 물밑 작업도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타항공도 사모펀드 운영사가 대주주로 있는 곳인 만큼 향후 인수합병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사진 이스타항공>
21일 항공업계와 투자금융(IB)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저비용항공사에 투자했던 사모펀드 운영사들은 현금회수(엑시트)를 위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내는 곳이 있는가하면 이미 현금회수를 진행하고 있는 곳들도 있다.
이스타항공은 올해 기단 확보 목표인 항공기 5대 도입을 마무리해 현재 기단 규모가 15대로 확대됐다. 최근 보잉 최신 기종 B737-8 12대 구매 계약을 체결하며 2년 내 기단 규모를 27대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에어부산(22대)보다 큰 규모를 갖추며 상위권 저비용항공사인 진에어(30대)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항공기 공급난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타항공의 발빠른 기재 도입은 다른 항공사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스타항공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VIG파트너스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재 확보를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VIG파트너스로서는 항공사의 핵심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기단 규모를 확대해 이스타항공의 기업가치를 한 단계 높이려는 의중을 품은 것으로 파악된다.
VIG파트너스 관계자는 “이스타항공의 추가적 성장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추가 자금 투입 등 전폭적 지원을 할 것”이라며 “내년에는 큰 폭의 매출 증대를 확신하며 안정적 흑자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티웨이항공에 투자했던 사모펀드 JKL파트너스와 에어프레미아 지분을 들고 있는 사모펀드 JC파트너스는 현금회수 작업에 돌입했다.
두 곳 모두 대명소노그룹에 각각의 지분을 넘겼다. 대명소노그룹은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에서 2대 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JC파트너스는 이전부터 현금화를 꾸준히 추진해오고 있었다. JC파트너스는 원래 에어프레미아의 최대주주였는데 올해 초 AP홀딩스에 지분 일부를 매각하며 2대 주주로 밀려났다가 이번에 대명소노그룹에 에어프레미아를 투자대상으로 한 투자목적회사 지분 50%를 매각하며 2대 주주 지위를 사실상 대명소노그룹에 넘겨줬다.
사모펀드 운영사들과는 반대로 저비용항공사 인수를 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 티웨이항공 항공기. <티웨이항공>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 2대 주주 지위를 확보한 대명소노그룹은 최근 가장 활발히 저비용항공사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곳으로 꼽힌다.
대명소노그룹은 항공사 지분을 확보한 이유가 기존 레저·숙박업과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라 밝히고 있지만 실제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 경영권을 모두 인수한 뒤 두 항공사를 통합해 항공업에 본격 진출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상황을 지켜본 뒤 둘 가운데 한 곳만 인수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일각에서는 대명소노그룹이 2대 주주에 머물며 실리를 챙기거나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항공사 지분을 매입했다는 추측도 나온다.
제주항공 역시 저비용항공사가 매물로 나왔을 때 인수를 시도할 수 있는 잠재적 인수자로 꼽힌다.
제주항공은 현재 기단 규모나 매출 측면에서 저비용항공사 가운데 1위 사업자다.
다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마무리된 뒤 통합 저비용항공사(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가 출범하면 단숨에 기단 규모에서 2위로 밀려난다. 매출에서도 뒤처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때문에 제주항공이 시장 입지 약화를 방어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인수합병이 거론되고 있다.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이사 사장은 최근 임직원들에게 인수합병 매물이 나왔을 때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제 3의 인수주체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하림그룹과 호반건설이 대한항공을 지배하는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며 항공업 진출을 시도한 전례가 있다.
하림그룹은 2021년 매물로 나왔던 이스타항공의 예비입찰에 참여해 항공업 진출을 꾀한 적이 있다.
호반건설은 지금도 한진칼의 단일 최대주주다. 이보다 앞서 호반건설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저울질기도 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마무리되면 대형항공사(FSC)를 인수하기는 어려워지는 만큼 항공업 진출을 노리는 기업들은 매물로 나올 수 있는 저비용항공사에 눈독을 들일 수도 있다.
저비용항공업계에서 인수합병이 시도가 활발해질수록 경영권 분쟁의 여지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최대주주 지배력이 약한 곳들은 표적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최근 티웨이항공은 대명소노그룹의 주식 공개매수 추진 소문이 나돌자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티웨이항공의 현재 최대주주는 도서출판업체 예림당이다. 예림당은 경영권을 둘러싼 사안을 놓고 별다른 의견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대명소노그룹이 2대 주주 지위를 확보한 또 다른 항공사인 에어프레미아는 경영권 이동 가능성에 따른 시장의 동요를 미리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에어프레미아 항공기. <에어프레미아>
에어프레미아는 최근 언론 배포자료를 통해 현 최대주주인 AP홀딩스와 그 우호세력은 지분 46.0%, JC파트너스 쪽은 22.0%, 기타 주주는 32.0%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어프레미아 관계자는 “지분율이 잘못 보도된 사항을 바로잡고 정보를 정확히 제공하고자 지분율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명소노그룹의 지분 확보와 관련해 사전 교감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이런 사안은 최고경영진 차원에서 결정하는 문제라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신용평가는 ‘미리보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영향 및 업체별 전망’ 보고서를 통해 “통합 대한항공, 통합 진에어라는 대형항공사 탄생은 독립계 항공사들 사이 통합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며 “코로나19 시기 항공사 주요 주주로 자리잡은 사모펀드들이 펀드 만기를 앞두고 지분 매각 계획을 세우고 있는 만큼 추가적 인수합병과 경쟁구도 재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바라봤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