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은행권의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자율배상을 둔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금융당국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필두로 무언의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4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은 많게는 1조 원을 배상해야 하는만큼 이사회와 주주 설득에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주주총회와 이사회가 마무리되는 다음주가 분기점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은행권의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자율배상을 둔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19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은 이번주 20일(하나은행)을 시작으로 29일(SC제일은행)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연다.
금융당국이 ELS 사태와 관련해 은행권에 자율배상 압박을 주는 만큼 해당 안건이 이사회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ELS사태와 관련해 다음주를 언급한 것도 이 같은 시각에 힘을 보탠다. 그는 전날 각 은행 입장은 주총과 이사회가 끝난 뒤에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이 원장은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연합회 이사회와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현안 관련 사항은 이번주나 다음주 이사회나 주주총회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런 절차를 거쳐 각 기관의 입장이나 그 과정에서 저희와 소통이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다만 이자리에서 ELS사태 관련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은행장을 만나서는 자율배상을 직접 촉구하지 않고 고민할 시간을 은행권에 준 셈이다.
금융당국은 그러면서 자율배상이 배임으로 이어진다는 우려에 선을 긋고 압박은 유지하는 모양새다. 은행권은 그동안 선제적 자율배상은 불완전판매를 인정하는 꼴인데다 배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난색을 보였다.
이 원장은 13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개인 투자자와 함께하는 열린 토론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배임과 관련된 여러 법률 업무를 20년 넘게 해왔는데 그렇게 볼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도 앞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 신속 신용회복지원 행사’ 뒤 기자들과 만나 “은행권의 배임 이슈가 왜 나오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금융감독원이 나름의 합리적 기준을 만들어 놓고 이를 중심으로 효율적으로 처리하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11일에는 ELS검사결과 및 분쟁조정기준을 발표하며 은행이 자율적으로 배상하면 과징금과 제재도 감경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다만 은행권은 배임 문제를 벗어도 배상액수가 수천억 원에서 크게는 1조 원을 넘기는 만큼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예를 들어 증권가는 H지수 기반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국민은행의 배상액수는 배상비율 30%일 경우 7~8천억 원, 40%일 경우 1조 원을 넘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은행이 ELS 관련 자율배상을 4월9일부터 시작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분위기가 술렁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ELS 관련 노출 규모가 다른 은행보다 미미해 선제적 배상설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파악된다. 증권가에 따르면 우리은행이 ELS사태로 배상해야 할 금액은 배상비율이 50%에 이르더라도 100억 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우리은행은 해당 보도와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이사회에서 논의될 사항도 사전에 알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 홍콩H지수ELS피해자모임이 1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갈수록 ELS 가입자들의 원성은 높아지고 있다.
홍콩ELS피해자모임은 전날 금감원장과 은행장 간담회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연 뒤 은행회관 진입을 시도했다. 앞서 15일에는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 앞에서 금감원 배상안이 발표된 뒤 첫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 뒤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찰이 막아섰고 고성이 오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양정숙 무소속 의원도 조용병 은행연합회장과 면담을 가진 뒤 참석해 목소리를 더했다.
길성수 피해자모임대표는 이 자리에서 “현재의 배상안은 은행 경영진과 금융당국 사이 합의로 만들어졌다”며 “현재 사태의 가해자인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