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업체 칠레 리튬 자체 공급망 확보 나서, 중국 독점체제 벗어날까

▲ 2023년 3월3일 칠레 안토파가스타 지역에 위치한 아타카마 사막에서 칠레화학광업협회(SQM)가 자사 소유의 염호, 즉 소금호수들에서 리튬을 채굴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남아메리카 칠레에 자체적인 리튬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중국이 최근 자국 내에 상당한 양의 리튬을 새로 발견하면서 독점체제를 굳힐 가능성이 커지다 보니 탈중국 공급망을 구축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일 블룸버그는 칠레의 해외 투자청인 ‘인베스트 칠레’ 청장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칠레에 리튬 가공공장을 세우는 방안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미국 지질조사국 자료에 따르면 칠레는 리튬 매장량 기준으로 세계 1위 국가다. 

칠레와 함께 ‘리튬 트라이앵글’을 형성하는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 세 국가에는 세계 리튬의 65%가량이 묻혀 있어 칠레에 진출하면 관련 산업에 잠재력을 키우기가 용이할 전망이다. 

리튬을 가공해 무엇을 만들어 어디로 판매할지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됐다. 

인베스트 칠레의 카를라 플로레스 전무이사는 블룸버그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칠레에서 리튬 양극재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칠레에서 리튬을 조달하고 양극재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세액공제를 받는 데에도 유리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르면 중국을 포함한 해외우려단체(FEOC)에서 조달한 배터리 광물을 배터리에 사용한 전기차는 미국 정부의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K배터리’ 기업들이 칠레 진출을 고려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중국이 전 세계 리튬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올라서면 배터리 공급망에 미치는 지배력이 지금보다 더 막강해지기 때문이다.
 
한국 배터리업체 칠레 리튬 자체 공급망 확보 나서, 중국 독점체제 벗어날까

▲ 2021년 3월 중국 장쑤성 난징의 신왕다((欣旺达) 배터리 유한공사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전기차용 리튬 배터리를 관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리튬 산업에서 중국의 지배력은 우선 제련공정에 가진 점유율에서 나온다. 

중국에 있는 리튬은 세계 매장량 가운데 6% 정도지만 제련공정의 50%가 중국에서 이뤄져 영향력이 막강하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중국산 광물을 거론한 이유도 리튬 산업에서 사실상 독점인 중국의 영향력을 낮추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이 많다. 

중국은 자국 내에 새로운 매장지도 찾아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현지시각으로 18일 보도를 통해 중국 천연자원부가 쓰촨성 야장현(雅江县)에서 리튬 1백만 톤을 새로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대략 전기차 1억1천만 대에 탑재할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수석 경제전문가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를 통해 “이번에 발견된 매장량은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 업체들이 한국의 경쟁업체들에 우위를 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의 대세인 리튬이온 배터리에 핵심 소재다. 최근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원자재 시장조사업체인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enchmark Mineral Intelligence)의 세계 리튬가격 지수는 2023년 1년 동안 무려 81%가 폭락했다. 

그러나 주요 기업들을 중심으로 리튬을 확보하려는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뿐 아니라 태양광 등 차세대 산업에 모두 필요한 자원이다 보니 전략자원이 되어가고 있다. 

중국 업체들도 리튬 산업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작업에 적극적이다. 세계 2위 리튬생산 업체인 간펑리튬을 포함해 다수의 중국 기업들이 전 세계의 리튬 생산 프로젝트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중국이 자국에서 더 많은 리튬을 발견하면 리튬 수출 또는 제련기술의 해외 유출을 틀어쥘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은 이미 배터리 음극재의 소재광물인 흑연 수출, 그리고 희토류를 가공하는 기술의 해외 이전을 강력히 통제한 전례가 있다. 

중국이 이번 발견을 계기로 리튬을 흑연이나 희토류와 같이 무기화해 공급망을 옥죌 수 있는 것이다. 

한국 배터리 기업으로서는 중국 외에 리튬 공급처를 다변화할 필요성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장조사기관 럭스 리서치의 유안 셩 유 상무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를 통해 “리튬을 어디서 공급 받을지는 많은 국가에서 점점 더 큰 관심사이자 전략적 주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