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카이스트 교수 김형준 "2040년 서울 강남 땅값? 차세대 기후모델 나와야 안다"
이경숙 기자 ks.lee@businesspost.co.kr2023-10-20 00:00:00
확대축소
공유하기
▲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면 기후시스템이 불안정해져 국지적 불안 즉 재해가 는다”며 기후, 사회경제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공동연구와 함께 한반도 실정에 맞는 차세대 기후모델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19일 자신의 연구실 화이트보드 앞에선 김 교수. 보드에 기후모델이 그려져 있었다. <비즈니스포스트>
[대전=비즈니스포스트 이경숙 기자] 지난해 8월8일 서울 동작구, 서초구, 강남구 일대에 시간당 141mm의 폭우가 쏟아졌다. 115년만의 폭우였다.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잇따랐다. 동작구와 관악구에선 반지하 주택이 물에 잠겼다. 서초구에선 수압으로 맨홀 뚜껑이 열리고 빌딩 지하주차장에 급류가 쏟아졌다. 강남구와 서초구 사이 강남역 일대가 침수된 탓이었다.
한 달 뒤, 포항엔 시간당 100㎜ 안팎의 폭우가 내렸다. 냉천이 넘치면서 인근 포항제철에선 창사 후 처음으로 모든 고로가 꺼졌다. 포스코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3400억 원 감소했다.
백 년만의 홍수, 수십 년만의 가뭄과 같은 기후재난은 앞으로 더 잦아질 수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발표한 ‘세계수자원 관리실태 보고서’에서 “우리는 예전보다 심각한 홍수와 가뭄을 겪고 있다”며 “기온 상승이 물의 순환을 가속화하고 망가뜨렸다”고 경고했다.
19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의 연구실에서 만난 김형준 교수는 기온 상승이 물 순환을 가속하는 원리를 “열역학 시스템은 온도와의 함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후변화와 지구 물 순환 즉 수문학(水文學) 연구자인 그는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면 기후시스템이 불안정해져 국지적 불안 즉 국지적 재해가 는다”고 덧붙였다.
가뭄과 폭우 같은 재해를 비롯해 수자원 등 물의 변화가 기업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즉 워터리스크(Water risk)는 기후변화와 함께 커진다.
워터리스크 전망을 묻자, 김 교수가 반문했다.
“115년 만에 왔다는 폭우가 2030년대, 2040년대엔 매해 내리게 될까요? 그러면 강남 땅값이 떨어질까요? 강남에 있는 부를 지키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써서 침수를 막게 될까요?”
그 답을 알려면 연구, 분석을 해야 한다. 그는 우리한테 닥칠 워터리스크 예측에는 기후뿐 아니라 사회시스템, 경제, 산업 등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떤 재해가 어느 지점 그리고 어느 시점에, 얼마나 크게 일어나는지, 이걸 알아야 (리스크를) 전망할 수 있고 대응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이러한 연구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서도 이미 하고 있다. 올해 3월 제6차 평가보고서(AR6) 종합보고서를 도출하기까지 기후, 수문, 사회경제 등 전 세계 각 분야의 학자 1천여 명이 참여했다.
그런데 국내에서 또 다시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서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김 교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적응 역량(Adaptation Capacity)는 지역(Local)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나라, 한 지역의 적응 역량을 높이기 위한 연구는 다른 나라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작년에 포항제철 고로가 침수됐는데, 포항 침수 대책을 다른 나라 어디에서 해주겠어요.”
게다가 강수량 변화 등 워터리스크를 지역별로 상세하게 분석하는 데에 기존의 전 지구적 기후모델은 한계가 있다.
IPCC 등 전 세계적으로 쓰이는 기후모델은 지구를 한 변이 150~200km인 정육면체(격자)로 나눠서 기후를 예측한다. 동서로 평균 300km, 남북으로 1100km인 한반도는 한 변이 150km인 정육면체 14개로 나뉜다. 경기도보다 큰 면적이 하나의 격자 안에 들어간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면적이 작은 나라라 굉장히 세밀하게 지역별 리스크를 분석해야 한다”며 한반도 기후 연구를 위한 ‘차세대 기후모델’ 개발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김 교수는 국제적으로 손꼽히는 논문들을 쓴 학자다. 도쿄대 사회기반학과 교수,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시절 많은 우수 논문을 발표해 2018년엔 미국 지구물리학회 최우수 저자(Top authors)로 선정되기도 했다.
2021년 한국으로 돌아온 김 교수는 문술미래전략대학원에 합류한 후에도 ‘세계 최초’ 타이틀을 늘려갔다.
메타어스(Meta earth) 즉 실제지구와 같은 디지털트윈 즉 가상지구를 컴퓨터로 구현해 지난해엔 세계 최초로 가까운 미래에 가뭄이 일상화된다는 사실을 국제공동연구진과 함께 예측했다. 지구온난화와 태풍 호우 빈도의 상관관계 또한 세계 최초로 증명했다.
올해 4월엔 강수 관측 오차범위를 거의 절반 가까이(42.5%) 줄인 알고리즘 개발로, 지난해 2월엔 기후변화 예측 정확도 개선 기술 개발로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 그림은 강수량 변화 예측(%)의 차이를 나타낸 그림. 2022년 2월 김형준 카이스트 교수는 일본 국립환경연구소, 일본 도쿄대 연구팀과 한 국제공동연구에서 67개의 기후모델에 의한 기온과 강수량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과거의 관측자료와 비교해 강수량변화 예측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 논문 일부 갈무리>
이렇게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학자지만 최근 그에게 고민해야 할 ‘변수’가 하나 생겼다. 내년 R&D(연구·개발) 예산 삭감 때문이다.
많은 기후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기상청 예산은 올해 1223억 원에서 1009억 원으로 214억 원이 줄어들었다.
연구장비 운영 예산도 줄었다. 국내 많은 기후학자들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터 즉 글로벌대용량실험데이터허브센터(GSDC)를 사용하고 있는데, 전기요금이 오른 후 지난 8월 슈퍼컴퓨터 가운데 절반의 가동이 중단됐다.
올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전기료 예산이 거의 다 소진된 탓이었다.
기후변화 영향 시뮬레이션에 슈퍼컴퓨터는 반드시 필요하다. 분석에 쓰이는 데이터량은 물론 계산량도 크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운영하는 연구팀, ‘메타어스랩’이 쓰는 서버만 해도 4페타바이트에 이른다. 한국 영화가 한 해 70여 편 개봉된다고 봤을 때 9만2700여 년치 개봉영화를 저장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1페타바이트는 1테라바이트의 1024배, 영화 153만 편이 들어가는 용량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 랩에 있는 서버로 계산할 수 있어요. 하지만 분석을 더 고도화하는 고해상도 실험, 차세대 기후모델을 시뮬레이션 하는 실험 같은 것들은 힘들어질 수 있죠.”
세계기상기구를 비롯해 국제기구들과 전 세계 학자들이 워터리스크가 높아진다고 경고하고 있는 지금. 기후변화 대응과 적응을 위한 연구·개발은 비용이 아니다. ‘땅값’과 ‘이익’ 그러니까 부동산가치, 기업가치를 지키는 투자다. 이경숙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워터리스크, 물이 산업안보다] 폭우와 가뭄 등 극단적 기후현상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점차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9월 한반도에 몰아친 115년 이래 최악의 폭우로 포항제철소 고로는 사상 처음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공장 운영에 필요한 수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투자 계획을 고심하고 있다. 물이 너무 많아도, 부족해도 문제다.
인구 증가와 산업 활성화, 기후변화로 ‘워터리스크(water risk)’, 물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산업 안보에 중요한 과제가 됐다. 워터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반도체, 철강, 화학, 발전 등 주요 산업은 물론 국가와 지역경제도 위험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는 CDP한국위원회를 맡고 있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함께 국내외 주요 기업 및 물 관리 선진국의 리스크 관리 및 대응사례를 발굴해 보도한다. 최신 동향과 해법 관련 기사들은 비즈니스포스트 워터리스크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