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최근 SK하이닉스 관련 뉴스에 '최초'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SK하이닉스는 8월 11일 차세대 D램인 LPDDR5X램의 24기가바이트 패키지를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해 중국의 고객사 오포에 공급한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6월에는 세계 최초로 4세대 HBM(HBM3)의 양산을 시작했다. 물론 HBM3를 공개한 것도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다.

서버용 D램에서도 2022년 1월 세계 최초로 1a급 DDR5 데이터센터 인텔 인증을 획득했으며 D램은 아니지만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도 올해 8월 8일 플래시메모리서밋에서 세계 최초로 300단 이상의 낸드플래시(321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행보를 보면 기술 개발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과 다르게 실적을 살펴보면 현재 SK하이닉스는 오히려 좋지 못한 상황에 빠져있다.

점유율 2위는 9년 만에 마이크론에게 빼앗기고 3위로 내려앉았고, 2022년 4분기에 10년 만의 분기 적자를 낸 이후 2023년 1분기에는 오히려 그 적자 규모가 더욱 커졌다. 2분기에도 규모는 1분기보다 줄긴 했지만 여전히 영업적자가 유지됐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그런 상황에서도 2022년에 무려 5조 원이라는, 역대 최대 연구개발 비용을 쏟아부었다. SK하이닉스가 R&D에 상당한 무게를 싣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술 중시 경영은 SK하이닉스에게 어떤 의미일까? 

반도체 업계에서 세계 최초 개발 경쟁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최초’ 경쟁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격변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이어졌던 DDR4 D램의 시대가 끝나고, DDR5 D램의 시대가 오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그러나 아주 유망한 시장인 HBM 시장도 열리고 있다.

DDR3, DDR4 시대에는 의심의 여지 없이 삼성전자는 시장을 지배하는 사업자였다. 하지만 DDR5 시대에도, HBM 시장에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제품의 세대교체는 언제나 2등에게는 가장 큰 기회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한때 코스피 시가총액 2위에 오르기도 했고, 지금도 시가총액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정도로 사실상 SK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는 소위 '콩라인'의 이미지가 강하다. SK하이닉스는 2014년 이후 지난해까지 무려 9년 동안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 2위를 지켜왔지만, 표현에 따라서는 ‘머물러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하이닉스 대표이사로 취임한 첫 신년사에서 "이제는 '패스트 팔로워'라는 정체성을 깨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패스파인더', 즉 1등 마인드를 가져야 할 때다" 라고 한 것 역시 SK하이닉스가 2등에 만족하는 것을 경계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위기 상황에서도 기술 중시 경영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판이 바뀌는 상황에서 판을 뒤집기 위해 DDR5와 HBM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주력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단시간에 따라잡고 1등을 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어쩌면 ‘1등’이라는 박정호 부회장의 이야기는 그저 선언적 의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1등을 쟁취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SK하이닉스는 기술개발을 통해 계속해서 고착화된 D램 시장의 구도를 바꾸려 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가 기술 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분야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DDR5와 HBM 뿐만이 아니다. 미래 먹거리로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인공지능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인 '사피온(SAPEON)'을 설립한 것이다.

사피온은 하이닉스와 SK텔레콤, SK스퀘어가 함께 투자해 설립한 회사로 2020년 11월 첫 제품인 ‘사피온 X220’을 공개했다. 올해 내로 X300 시리즈를 출시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는데, 업계에서는 사피온이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은 매우 높다. 직접적 경쟁사인 마이크론 역시 자신들의 기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능가한다고 주장하면서 계속 경쟁력을 강화해나가고 있고, 심지어 최근에는 D램 수요 약세 때문에 SK하이닉스의 실적이 계속 좋지 못하기도 했다.

과연 SK하이닉스는 이런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폭풍 속에서 ‘기술 중시 경영’을 통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꿔낼 수 있을까? 

다음 영상에서는, 오늘 계속해서 이야기했던 HBM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이 HBM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