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엘앤에프가 2차전지 주요 소재인 양극재를 만드는 전구체의 내재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LS와 협력하게 되며 끈끈한 동업자 관계를 맺었던 허씨와 구씨 두 기업가문의 유대가 배터리 산업에서도 이어지게 됐다.
엘앤에프가 양극재 분야 기술력과 더불어 범LG가 기업들과 맺고 있는 돈독한 관계는 글로벌 2차전지 소재기업으로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 엘앤에프가 2차전지 양극재의 중간소재인 전구체 내재화에 LS와 협력하며 끈끈한 동업자 관계를 맺었던 허씨와 구씨 두 기업가문의 유대가 배터리산업에서도 이어지게 됐다. 사진은 허제홍 엘앤에프 이사회 의장(왼쪽)과 구자은 LS그룹 회장.
16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엘앤에프가 LS그룹과 전북 새만금 산업단지에 전구체 공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하기로 함에 따라 그동안 취약점으로 여겨졌던 중간소재 공급망을 강화하는 계기를 맞게 됐다.
엘앤에프와 LS는 이날 각각 이사회에서 전구체 생산법인 '엘에스엘앤에프배터리솔루션(가칭)' 설립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엘앤에프는 1372억5천만 원(45%), LS는 1677억5천만 원(55%)를 각각 출자한다.
신설 합작사는 전구체 생산은 물론 황산니켈과 배터리 재사용·재활용 분야까지 양극재와 관련한 포괄적 사업협력도 진행할 예정이다.
엘앤에프와 LS의 전구체 분야 협력은 국내기업 사이 동맹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국내 기업들 가운데도 전구체 사업에 뛰어든 사례가 이전에도 있었는데 대개는 중국기업과 합작 형태로 사업을 진행했다. 양극재에 쓰이는 중간소재와 핵심 원료 분야에서 중국기업들의 영향력이 매우 큰 만큼 소재 생산 단계에서 중국기업을 배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통해 배터리를 비롯한 친환경 분야 성장산업들에서 탈중국 기조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국내 배터리 관련 기업들도 셀과 소재를 불문하고 중장기적으로 중국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큰 상황에 놓여 있다.
엘앤에프로서는 전구체를 비롯한 양극재 분야의 내재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산화까지 꾀할 수 있게 됐고 이 과정에서 LS그룹이란 든든한 우군을 확보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LS그룹으로서도 엘앤에프와 협력은 배터리 관련 사업을 키우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엘앤에프의 주력품목인 양극재는 2차전지 원가의 40~50%를 차지하는 핵심소재다. 엘앤에프는 기술적 난도가 높은 하이니켈 양극재를 제조할 수 있는 소수의 기업 가운데 하나로 글로벌 양극재 시장에서 작지 않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
엘앤에프와 LS그룹의 동맹은 과거 한 지붕 아래서 동고동락했던 허씨·구씨 가문의 우애가 사업상 협력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엘앤에프는 허제홍 이사회 의장과 허제현 부사장 등 범GS가문 오너가 지배하는 회사다. 허 의장과 허 부사장은 LG그룹의 공동 창업자인 허만정 창업자의 증손자다.
LG그룹은 사돈 지간이기도 한 구인회 창업자와 허만정 창업자의 동업에서 비롯됐다.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가 각각 지분 6대 4로 동업을 시작해 화학과 전자 사업 등을 일구고 사세를 확장하며 재계에서 대표적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업 규모가 커지고 자손들도 많아지면서 양 쪽 집안은 계열분리를 하게 돼 허씨 집안은 GS그룹으로 떨어져 나오게 됐다.
재계 역사를 보면 그룹의 계열분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친족 사이에서도 크고 작은 분쟁이 숱하게 있었고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구씨와 허씨 집안의 계열분리는 비교적 원만하게 진행됐고 계열 분리 이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LG그룹을 모태로 하는 기업들에서 면면히 계승되고 있는 ‘인화’ 중시 철학의 영향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LG그룹과 GS그룹은 그 이후로도 세부적으로 계열분리를 거쳤고 오늘날 범LG, 범GS 가문의 여러 기업집단들이 존재한다. 이번에 엘앤에프와 전구체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한 LS그룹도 범LG가문의 일원이다.
사업적으로도 허씨와 구씨 양 쪽 집안 기업들은 여전히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엘앤에프를 보더라도 2000년 설립됐을 때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하는 디스플레이용 백라이트유닛(BLU)을 주로 제조하며 성장한 이력이 있다.
배터리 소재사업 비중이 커진 지금은 LG에너지솔루션을 주 고객사로 두고 양극재를 공급하고 있다. 2차전지 밸류체인상에서 최종 단계인 셀·모듈과 2차전재의 핵심소재인 양극재에서 두 집안의 유대관계가 공고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엘앤에프와 LG에너지솔루션은 각각 양극재와 셀 분야에서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지닌 곳으로 두 회사의 협력관계는 서로의 필요에 따라 이뤄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대를 이어 유지되고 있는 두 가문 사이 우의는 두 회사가 각각 납품처와 공급망 확보의 신뢰성을 높이는 무형의 자산이기도 하다. 급격히 성장하는 2차전지 시장에서 증설과 사업확장에 속도를 내야 하는 두 회사로서는 납품처와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
엘앤에프는 또 다른 범LG가 일원인 LS그룹과 손잡으며 양극재 아래 단계의 원료와 소재 내재화에서도 유대관계를 구축하게 됐다.
양극재는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섞은 전구체에 리튬을 더해 만들어진다. 엘앤에프는 LS그룹과 전구체와 그 앞단계에 해당하는 리튬사업 전반에서 다각도의 협력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엘앤에프 측은 앞서 1분기 실적설명회를 진행하며 국내에서 합작법인 형태로 전구체사업의 수직계열화를 검토하고 있으며 리튬 확보를 위해 친환경 수산화리튬 생산 공법을 적용해 정제련부터 시작하는 사업모델을 구축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LS의 계열사 LS MnM은 80여 년의 제련 과정의 부산물, 광산원물 및 공정 스크랩 리사이클링 등을 통해 생산한 황산니켈을 합작사 엘에스엘앤에프배터리솔루션에 공급한다.
LS는 보도자료를 통해 “엘앤에프와 전구체 합작사 설립은 2차전지 소재 사업 분야로 본격적 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