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이 글로벌 배터리 선두기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고 있지만 전기차 배터리의 높은 성장성을 탐내는 글로벌 경쟁자들의 도전도 거세지고 있다.
권 부회장은 기술력과 생산능력 등의 강점을 앞세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는 한편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로도 사업을 넓혀 성장동력을 단단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사진)이 글로벌 배터리 선두기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자들의 도전도 거세지고 있다.
23일 배터리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일본, 중국 배터리 셀 제조사들이 증설과 기술개발에 속도를 내며 배터리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본 파나소닉은 최근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북미에 적어도 두 곳의 공장을 추가로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파나소닉은 2031년 3월까지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연산 200GWh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보다 약 4배 가량 확대되는 것이다.
특히 파나소닉은 북미 증설을 통해 '4680' 배터리 양산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4680 배터리는 지름 46㎜, 길이 80㎜의 원통형 배터리로 기존 원통형 배터리보다 에너지 용량을 높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단기간에 양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배터리 가운데서는 가장 개선된 형태로 꼽힌다.
테슬라가 4680배터리를 채택할 계획을 세운 만큼 주요 공급사인 파나소닉으로서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4680배터리 개발과 양산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파나소닉은 일본 내 와카야마 공장에 4680배터리 파일럿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일본 내에도 2곳의 새로운 부지에 배터리 기술력을 심화하기 위한 시설을 마련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파나소닉은 스텔란티스나 BMW와도 북미 배터리 생산을 위해 협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파나소닉이 테슬라의 대항마로 꼽히는 럭셔리 전기차업체 루시드와 에너지솔루션기업 헥사곤푸루스에 2170원통형배터리를 공급할 것이란 관측은 이미 확실시되고 있다.
파나소닉은 현재 시점에서는 북미에서 전기차용 배터리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다.
테슬라 전기차의 북미 시장점유율 60%가 넘는 만큼 테슬라가 공급받는 2차전지 가운데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파나소닉의 북미 시장 점유율도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테슬라가 미국 시장에 공급하는 전기차에서는 파나소닉의 원통형 배터리 비중이 압도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에서 생산능력을 빠른 속도로 끌어올리고 있는 만큼 기존 완성차기업들의 전기차 전환률이 높아질수록 미래 생산능력과 고객사 다변화 측면에서 앞서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의 강점이 부각될 것이란 전망도 많다.
하지만 파나소닉 역시 북미에서 증설과 기술개발, 고객 다변화에 적잖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두 한·일 간판 배터리기업의 북미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예상보다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기업들 역시 글로벌 배터리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고삐를 놓치 않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북미 시장에서 입지가 축소되는 데 대응하는 차원에서 완성차기업과 합작하는 형태로 북미 시장에 우회 진입을 시도하는 한편 제약이 심한 북미 시장을 대체할 수요처를 찾는 데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CAT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2018년 이후 발표한 유럽 투자 규모는 175억 달러(약 22조4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대 배터리업체 CATL은 헝가리에 유럽에서 가장 큰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 공장을 건설하거나 확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기업들은 선점한 LFP(리튬인산철)배터리를 더 고도화하며 글로벌 영향력을 더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고션하이테크(Gotion High-Tech)는 최근 LMFP(리튬인산철망간) 기반의 배터리팩 아스트로이노 L600(Astroinno L600)를 선보였다. 회사 측은 이 제품이 LFP기반 배터리팩으로서는 최초로 주행거리 1천 km를 달성한 사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LFP배터리는 한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NCM 등 삼원계 배터리보다 주행거리는 짧지만 비용 측면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며 확산되는 추세다. 주행거리 약점까지 보완되면 그만큼 중국기업들의 선점 효과가 더 두드러질 수도 있다.
권영수 부회장으로서는 목표대로 LG에너지솔루션을 글로벌 배터리 시장 선두 자리에 올려 놓는 일이 만만치 않아졌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권 부회장은 LG에너지솔루션이 글로벌 경쟁사들보다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기반으로 초격차를 유지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 중국에서 연구개발(R&D)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 세계 3300여 명의 R&D 인력이 포진해 있다.
매년 꾸준히 R&D 투자비용을 늘리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은 소재와 공정, 핵심기술 분야에서 등록된 특허만 2만7천 여 개를 보유하고 있다. 출원 특허를 포함하면 약 4만8천 여개로 업계에서 독보적 특허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가장 급격한 성장세가 전망되는 북미시장 생산능력에서도 단연 1위로 꼽힌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미시간에 연산 20GWh 규모 단독 공장과 함께 GM과 합작공장(연산 45GWh)도 운영 중이다. 이미 연간 65GWh 생산능력을 갖췄다.
게다가 올해 GM과 합작공장(연산 50GWh)을 추가로 가동하는데 이어 2024년 캐나다에 짓는 스텔란티스와 합작공장(연산 45GWh), 2025년 애리조나 단독공장(연산 43GWh), 오하이오의 혼다와 합작공장(연산 40GWh), 미시간의 GM과 합작공장(연산 50GWh) 등을 가동할 예정이다.
2025년이면 연산 300GWh에 육박하는 생산능력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파나소닉과 비교하면 생산능력의 규모와 시기에서 모두 한 수 위라 할 수 있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공장을 지어놓는다고 가동률과 수율이 금방 정상화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 모두 초기에 상당한 고생을 하며 북미에 생산기반을 마련했는데 다른 경쟁사들이 뒤늦게 증설을 추진한다고 해도 당장에 한국 배터리기업의 경쟁상대가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런 기술력과 생산 능력에서 강점을 기반으로 권 부회장은 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 등의 분야로도 사업을 더 확장하며 성장동력을 강화해 나가는 데도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 LG에너지솔루션과 GM의 오하이오주 배터리 합작공장.
과거 LG에너지솔루션은 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의 화재 위험성 탓에 막대한 규모의 리콜 비용을 여러 차례 부담한 바 있다.
2017년 4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 전용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진 제품의 자발적 교체에 나섰던 2021년 5월 결정으로 약 4천억 원의 비용이 소요된 것으로 추산된다. 화재 같은 돌발상황에 따른 비용 부담이 적지 않은 셈이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이 화재에 대한 안정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지는 LFP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에 적용하려고 하는 만큼 화재 우려는 크게 경감될 것으로 보인다.
권 부회장은 미국 애리조나주 퀸크릭에 3조 원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용 LFP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파우치형 LFP배터리를 생산하게 되는데 올해 착공해 2026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에너지저장장치 전용 배터리 생산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글로벌 배터리기업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이 처음이다.
권 부회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애리조나 독자 공장 건설이 빠르게 성장하는 북미 전기차 및 ESS 시장을 확실하게 선점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차별화한 글로벌 생산 역량과 독보적 제품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세계 최고의 고객가치를 제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에너지저장장치는 생산된 전기를 저장장치에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기에 공급해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장치로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북미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은 2021년 14.1GWh에서 2030년 159.2GWh로 10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형우 SK증권 연구원은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이 개화되면 배터리 공급부족이 심화할 수 있다”며 “에너지저장장치는 평균 공급단가도 전기차용보다 높은 만큼 LG에너지솔루션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