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항한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낙관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항공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제기된 두 회사의 합병에 따라 떠오를 수 있는 경쟁 관련 문제를 얼마나 잘 설득하느냐에 승인 여부가 달려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마냥 낙관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두 회사의 합병을 놓고 유럽 내 일부 노선에 대한 경쟁 강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유럽연합 경쟁당국의 부정적 의견이 두 회사의 합병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통상적 의견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 경쟁당국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우려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과거 다른 항공사들의 합병을 불허하기도 했던 만큼 대한항공의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힘들다.
18일 항공업계 분위기를 보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에 대해 경쟁이 제한될 수 있다는 취지로 낸 중간심사보고서가 두 회사의 합병을 승인하지 않는 데 중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7일 홈페이지를 통해 두 회사의 기업결합 심사에 대한 중간심사결과(SO)를 공개하며 ‘인천~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로마’ 등 4개 노선에서 여객 운송 서비스 제공 경쟁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유럽 전역과 한국을 잇는 화물 운송 서비스 제공 경쟁이 낮아지는 점도 두 회사의 합병으로 나타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점이라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짚었다.
사실 이 두 가지 '문제점'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2월17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관련 심층조사에 들어가면서 냈던 초기 의견과 동일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회사가 유럽에서 많은 매출을 내고 있고 한국에서 1, 2위의 항공사인 만큼 신중하게 조사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한 목적에서 중간심사보고서를 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대한항공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중간심사보고서와 관련해 “2단계 기업결합 심사 규정에 의거해 진행되는 통상적 절차”라는 입장을 낸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앞으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경쟁당국이 문제라고 보는 사안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거나 심사위원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업계 일각에서는 최종적으로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기도 하는 이유다.
실제로 3년 전 캐나다 항공사들이 시도한 기업결합은 유럽연합 경쟁당국에서 제기한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해 실패한 바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0년 5월부터 캐나다 1위 항공사인 에어캐나다와 3위 항공사인 에어트랜샛의 기업결합을 놓고 심층조사에 들어갔다.
당시 집행위원회는 예비 시장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 합병이 유럽과 캐나다 노선 사이의 여객 운송 서비스 경쟁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두 항공사가 보유한 유럽~캐나다 중복 노선만 33개였기 때문에 합병 이후 독과점을 낮출 방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에어캐나다는 유럽연합 경쟁당국의 요구대로라면 회사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추가 시정 조치를 거부했고 결국 기업결합을 스스로 포기하겠다고 2021년 4월 밝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에어캐나다의 발표 이후 성명서를 통해 “에어캐나다와 에어트랜샛의 기업결합을 놓고 2단계 조사 중에 수행한 심층조사에 따르면 두 회사의 합병은 수많은 대서양 횡단 노선에서 경쟁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예상됐다”며 “시장 테스트 결과 제시된 구제책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011년에는 유럽 항공사 사이의 합병이 경쟁당국에 의해 좌초되기도 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11년 1월 그리스 국영항공사인 올림픽항공과 에게항공의 합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집행위원회는 “그리스 항공 운송 시장에 대한 준독점을 야기할 수 있다”며 “해마다 아테네를 오가는 노선으로 여행하는 600만 명의 그리스 및 유럽 소비자 가운데 400만 명에게 더 높은 요금이 부과되었을 것이다”라며 올림픽항공과 에게항공의 기업결합을 불허했다.
집행위원회는 “두 항공사는 함께 그리스 국내 항공 운송 시장의 90% 이상을 통제하고 있으며 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충분한 규모의 새 항공사가 기존 두 항공사의 노선에 진입하여 합병 법인의 가격 경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현실적 전망은 보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물론 대한항공이 앞으로 유럽연합 경쟁당국과 충분히 소통하며 이들이 요구하는 시정 조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면 조건부 허가를 받아낼 가능성도 충분하다.
대한항공은 이미 2021년 1월 유럽연합에 기업결한 신고를 낼 때부터 이런 전례를 충분히 검토하고 대안 시나리오와 해명자료를 꾸준히 만들어온 것으로 알려진다.
우선 에어캐나다의 합병이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에어캐나다와 에어트랜샛의 중복 노선이 33개나 됐기 때문인데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유럽 중복 노선은 4개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면 유럽연합 경쟁당국도 사안을 다르게 바라볼 여지가 생긴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 합병하지 않으면 결국 아시아나항공이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이 무너진다면 결국 한국과 유럽을 오가는 노선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이는 곧 유럽 소비자들이 한국으로 향할 때 선택할 수 있는 후보지를 축소해 경쟁을 제한한다는 취지의 주장도 펼 수 있다.
▲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11년 1월 그리스 항공사인 올림픽항공과 에게항공의 합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집행위원회는 “그리스 항공 운송 시장에 대한 준독점을 야기할 수 있다”며 “해마다 아테네를 오가는 노선으로 여행하는 600만 명의 그리스 및 유럽 소비자 가운데 400만 명에게 더 높은 요금이 부과되었을 것이다”라며 올림픽항공과 에게항공의 기업결합을 불허했다. |
실제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11년에 불허했던 올림픽항공과 에게항공의 기업결합을 2013년 승인했다.
당시 집행위원회는 “위원회의 심층조사에 따르면 올림픽항공이 에게항공에 인수되지 않으면 재정적 어려움에 따라 가까운 장래에 시장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며 “올림픽항공이 폐업하면 에게항공은 유일한 그리스 항공사가 되고 올림픽항공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게 된다”고 봤다.
집행위원회는 이어 “따라서 합병 여부에 관계없이 올림픽항공은 에게항공의 경쟁자로 곧 사라질 것이며 따라서 합병이 향후 시장의 경쟁에 추가적으로 줄 부정적 영향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합병을 승인한다”고 덧붙였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소통해 기업결합에 성공한 사례는 더 있다.
프랑스 항공사 에어프랑스와 네덜란드 항공사 KLM의 합병은 2004년 2월 조건부 승인됐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당시 두 회사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프랑스 파리 노선의 하루 이착륙 회수를 94편 줄이고 다른 항공사가 직항 노선에 취항하지 않는 장거리 노선의 요금을 통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두 회사의 합병을 승인했다.
마리오 몬티 유럽연합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당시 성명을 통해 “두 회사의 합병으로 항공 교통 이용 고객들은 두 회사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노선에 높은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도 다양한 서비스와 노선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공정경쟁의 규정만 충족한다면 거대 항공사의 합병이 소비자 이익에 부합할 수 있다고 봤다.
이밖에도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와 스위스항공의 기업결합(2005년), 이탈리아 항공사 알리탈리아와 아랍에미리트 항공사 에티하드의 기업결합(2014년) 등도 모두 유럽연합 경쟁당국이 제기한 경쟁 제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데 동의한 덕분에 승인됐다.
대한항공이 유럽연합 경쟁당국에서 아시아나항공과 합병을 승인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대한항공은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 등 3개 나라에서만 합병 심사만 남겨 놓고 있다.
유럽연합이 두 회사의 합병을 승인하면 나머지 국가들도 승인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불허한다면 나머지 국가의 승인 여부와 무관하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없던 일이 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승인 여부를 8월 초까지 조사해 발표한다.
대한항공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중간심사결과보고서가 나온 뒤 보도자료를 통해 "유럽연합 경쟁당국의 우려 사항을 해소할 수 있도록 답변서 제출 및 적극적인 시정조치 논의를 통해 최종 승인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