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철동 LG이노텍 대표이사 사장(사진)이 고부가 반도체 기판인 FC-BGA 사업에 고삐를 본격적으로 죄고 있다. 애플에 의존도 높은 사업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
[비즈니스포스트] 정철동 LG이노텍 대표이사 사장이 고부가 반도체기판 사업의 적용처를 기존 IT기기에서 서버와 전장(자동차용 전자장비)으로 넓힐 채비를 하고 있다.
LG이노텍은 주력 카메라모듈 사업에서 애플 의존도가 큰데 고부가 반도체기판 사업을 확장하면 매출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12일 LG이노텍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정 사장은 구미2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고부가 반도체기판 FC-BGA(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의 적용처를 구미4공장 구축을 계기로 네트워크, 모뎀, 디지털TV용에서 서버 및 전장용으로 넓힐 준비를 하고 있다.
FC-BGA는 중앙처리장치와 그래픽처리장치 등 전기신호가 많은 반도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메인보드와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반도체 기판이다.
LG이노텍은 최근 연면적 약 22만㎡ 규모의 구미4공장에 FC-BGA 생산설비를 반입하고 올해 하반기까지 제품 양산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이노텍의 FC-BGA 새 공장은 인공지능, 로봇, 무인화, 지능화 등 최신 디지털전환(DX)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공장으로 구축된다.
정 사장은 2022년 2월 FC-BGA 시장 진출을 공식화하면서 업계 후발주자임에도 이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키우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바 있다.
정 사장이 이처럼 FC-BGA 기판 양산과 사업포트폴리오를 빠르게 넓혀가는 데 자신감을 내비치는 배경에는 그동안 여러 반도체기판을 만들어본 경험이 자리잡고 있다.
LG이노텍은 FC-BGA와 생산 공정이 비슷한 무선주파수패키지 시스템(RF-SiP)용 기판과 5G밀리미터파 안테나 패키지(AiP)용 기판 세계 점유율 1위로서 노하우를 다져왔다.
LG이노텍은 그동안 쌓아올린 기술력을 효과적으로 FC-BGA 생산에 이식시켜 성장하는 산업에 올라타겠다는 복안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후지 키메라 종합연구소에 따르면 글로벌 FC-BGA 기판 시장규모는 2022년 80억 달러에서 연평균 9%씩 성장해 2030년 165억 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FC-BGA는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해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 과거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제조사가 인텔, AMD 등으로 제한돼 있다가 최근 애플, 구글, 테슬라 등을 비롯한 빅테크 기업들이 핵심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고 위탁생산을 통해 반도체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와 전자업계에서는 FC-BGA 공급 부족현상이 최소 202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 사장은 FC-BGA 기판 사업의 성장성 높을 뿐만 아니라 공급부족이 나타나는 점에 착안해 카메라모듈 사업에 비견할 만큼 주력 사업으로 육성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LG이노텍은 카메라모듈을 맡고 있는 광학솔루션 사업에서 애플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LG이노텍은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에 카메라모듈을 공급하고 있는데 LG이노텍 전체 매출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은 75%에 달한다.
LG이노텍 매출에서 애플 비중은 2016년 35% 가량이었지만 2017년 55%, 2018년 58%, 2019년 65%, 2020년 68%로 해마다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LG이노텍은 이와 같은 높은 애플 의존도 때문에 지난해 실적 하락을 경험한 바 있다.
LG이노텍은 2022년 4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6조5477억 원, 영업이익 1700억 원을 거뒀다. 2021년보다 매출은 14.4%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60.4% 급감했다. 애플 공급망에 얽혀있는 기업들이 생산차질을 빚으면서 연쇄적으로 LG이노텍의 실적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LG이노텍의 주요 고객사인 애플은 아이폰 조립 협력업체 폭스콘의 정저우 공장에서 생산차질을 마주했다.
폭스콘은 중국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봉쇄정책으로 근로자들이 이탈하면서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까지 제품 생산에 타격을 입었다. 이는 아이폰 생산에도 영향을 미쳐 애플 공급사슬에 얽혀 있는 LG이노텍도 실적에 영향을 받았다.
LG이노텍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면서 “지난해 4분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중국의 봉쇄조치에 따른 주요 공급망 생산차질, 글로벌 경기둔화로 인한 TV·PC·스마트폰 등 IT세트 수요 부진, 원달러 환율 하락 등 여러 악재로 수익성이 둔화됐다”고 설명했다.
정 사장은 반도체 기판사업 확장을 계기로 사업포트폴리오를 고르게 가져가는 경영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올해 1월30일 열린 구미4공장 설비반입식에서 "FC-BGA 기판은 그동안 글로벌 1위 기술력과 생산성으로 기판소재시장을 선도해온 LG이노텍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며 "차별화된 고객가치 창출로 FC-BGA를 반드시 글로벌 1등 사업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