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재 기자 rsj111@businesspost.co.kr2022-11-29 11:39:08
확대축소
공유하기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시멘트 운송업계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가장 피해가 큰 업종에 선별적 업무개시를 내린 셈이다.
업무개시명령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화물연대의 파업을 멈추는데 효과가 있을지를 두고는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구체적 요건이 명확하지 않은데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29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무회의를 거쳐 시멘트업계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30일 2차 협상을 앞두고 있는 만큼 전면적으로 모든 산업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기보다는 피해가 큰 업종을 먼저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우리 민생과 국가 경제에 초래될 더 심각한 위기를 막기 위해 부득이 시멘트 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고 말했다.
실제 국토부가 28일 건설사 2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12개 건설현장 가운데 55.7%를 차지하는 508곳에서 레미콘 타설 작업이 중단됐다.
하지만 화물연대 측은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화물연대 지도부는 28일 경기 의왕시 서경지역본부에서 정의당 지도부와 간담회를 가진 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은 간담회에서 “정부는 모든 행정기관을 총동원하고 업무개시명령 운운하며 협박을 하고 있다”며 “업무개시명령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측이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겠다고 하는 이유는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업무개시명령 관련 법령에는 절차에 관해 따로 규정돼 있지 않아 행정절차법을 따라야 한다.
행정절차법의 조항을 살펴보면 적법한 업무개시명령 송달을 위해서는 주소지로 명령서를 보내야하고 당사자가 이를 받아야 명령서의 효력이 발생한다.
현실적으로 개별 화물노동자들에게 각각 주소지로 명령서를 전달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보나 운송사를 통해 명령을 전달할 수도 있지만 공고일에서 14일이 지나야 효력이 발생한다.
더욱이 파업 참가자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일도 어렵다. 화물연대 파업이 아닌 개인적 사정에 따라 일을 하지 않는 사람까지 걸러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무개시명령의 발동요건이 추상적이라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제14조(업무개시명령)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장관은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화물운송을 거부하여 화물운송에 커다란 지장을 주어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만한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운송사업자 또는 운수종사자에게 업무개시를 명령할 수 있다.
이 요건 가운데 ‘정당한 사유’, ‘집단으로’ ‘심각한 위기’ 등이 명확하지 않아 정부의 판단에 대해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운송사업자 또는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자격 정지 또는 자격 취소의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요건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죄형법정주의는 범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에 규정해야만 한다는 형법상의 기본원칙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업무개시명령은 강제노역과 강제근로를 금지하는 헌법과 근로기준법에 위배된다"며 "자의적 요건 규정으로 임의로 처벌할 수 있게 돼 죄형법정주의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고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화물기사들의 운송거부를 노동자의 집단거부로 볼 수 있냐는 지적도 나왔다.
특수고용노동자란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업무위탁계약 등에 의해 노무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 등의 형태로 대가를 받는 사람을 말한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 따르면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다.
다시말해 자영업자가 영업을 하지 않겠다는데 업무개시명령을 통해 정부에서 영업을 하라고 강제한다는 것이다.
화물연대는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명령무효 가처분 신청 등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업무개시명령이 운수종사자와 운송사업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며 “화물운송 종사자들이 업무에 복귀하도록 해 국가 물류망을 복원하고 국가 경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