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보험사들이 내년 새 회계기준 도입을 앞두고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들은 회계상으로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정받는 신종자본증권을 자본확충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 왔는데 흥국생명 사태로 더 이상 이를 통한 자금조달이 쉽지 않게 돼 버렸기 때문이다.
▲ 보험사들이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콜옵션) 미행사로 내년 새 회계기준 도입을 앞두고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
7일 보험업계 안팎에 따르면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 미행사로 다른 보험사들은 신종자본증권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원하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이번 조기상환 미행사로 국내외 자금시장에서 불확실성이 일부 확대되면서 차환 목적으로 신규 외부 자금을 조달하려고 한 회사들의 경우 조달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대호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태는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만기연장 리스크 프리미엄을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하며 일부 자본비율이 감독규제 수준에 미흡할 경우에는 투자자 모집 자체도 어려워지는 환경이 나타날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최근 레고랜드 이슈와 기업들의 펀더멘털(기초체력) 저하 가능성 고조로 국내기업이 발행한 외화채권 신용스프레드(회사채 신용등급간 금리격차)는 확대 기조였다”며 “흥국생명의 조기상환 미실시로 투자 심리는 당분간 위축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바라봤다.
흥국생명은 9일 예정된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조기상환을 연기했다.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상환 자금을 조달하려고 했지만 최근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차환 발행에 차질이 생기자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이다.
이후 DB생명도 13일로 예정된 300억 원 규모의 국내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조기상환을 내년 5월로 연기했다.
보험업계는 내년 조기상환 행사가 다가오는 13억 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에 대해서도 걱정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화생명은 내년 4월(10억 달러), KDB생명은 내년 5월(3억 달러)이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3분기 실적발표 때에도 내년 4월 조기상환을 이행할 것이라는 점을 이미 얘기했다"며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고 회계장부에서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기록된다는 특성 때문에 보험사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유용했다.
특히 보험사들은 새 회계기준 도입을 앞두고 재무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는 손쉬운 통로로 신종자본증권을 활용해 왔다.
내년 1월부터 보험사에 새롭게 도입되는 새 회계기준인 IFRS17은 부채 평가기준을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한다. 이에 보험부채의 측정과 수익, 비용 인식기준이 변경돼 보험사의 부채가 크게 늘어나게 되면서 지급여력비율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지급여력비율이 하락하면 금융당국의 규제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보험사들은 제도 도입에 앞서 재무건전성 강화에 공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흥국생명 사태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가 어렵게 되면서 보험사들은 재무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험상품군 재정비, 자산 매각, 경비 절약 등에 한층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NH농협생명과 흥국생명 등은 저축성 보험에서 보장성 보험 중심으로 상품군 비중을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NH농협생명은 올해 해피콜더블패스NH건강보험, 농업인NH안전보험 등의 보장성 보험을 내놓고 손해보험사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자동차사고부상 치료를 보장하는 뉴삼천만인NH재해보험을 내놓았다.
흥국생명도 올해 암 보장에 특화된 흥·Good 내일이 든든한 암보험, 간편심사로 유병자들의 보험료 부담을 낮춘 ‘다사랑OK335 간편건강보험’을 출시했다.
저축성 보험은 보장성 보험에 비해 한 번에 들어오는 보험료가 크기 때문에 보험료 수익을 올리는 데 유리하지만 새 회계기준에서 부채로 평가된다.
반면 보장성 보험은 보험료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가입자에게 돌려주는 보험금이 적어 지급여력비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한화생명과 한화손해보험은 보유 부동산을 매각해 재무건전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고 있다.
한화생명은 10월 노원과 평촌, 중동, 구리 등지의 사옥 4개를 매각해 2천억 원 규모의 자본을 확보하기로 했다. 한화손해보험도 11월 여의도 사옥을 4560억 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부동산 가치의 변동폭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는 것은 시가를 기준으로 하는 새 회계기준에서는 불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유동성 위기가 있어 다들 상황이 좋지 못한 것 같다”며 “모든 보험사가 자금을 비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