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이 4대강 공사 담합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과징금 취소 소송에서 졌다. 삼성물산은 “이명박 정부가 담합을 알면서도 상황을 조장하고 묵인했다”는 주장까지 펼쳤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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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
삼성물산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4대강 공사 과정에서 담합 과장금 103억여원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서울고법으로부터 패소판결을 받았다고 8일 밝혔다.
삼성물산은 소송에서 “2009년 당시 대규모 수자원 턴키 공사를 시공 설계할 능력이 있는 건설사는 10개 이내에 불과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에 4대강 공사를 마치기 위해 15개 공구를 동시해 발주해 건설사들이 담합하도록 상황을 조성하고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은 “정부는 4대강사업과 관련해 건설사의 공사에 광범위하게 개입했고 건설사들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입찰에 참여한 것”이라며 “담합행위는 발주처의 의사와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른 것이라 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또 “정부 주도의 대운하사업 추진에 막대한 규모의 운영분담금을 지급했다가 일방적 중단 발표로 고스란히 손실을 봤다”며 “이 사건 공동행위로 얻은 이익이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은 2011년 감사원의 4대강 감사결과 내용을 인용해 이런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판부는 삼성물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옛 국토해양부나 발주처가 담합을 유도하는 행정지도를 했다고 인정하기가 부족하고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삼성물산은 공정거래위로부터 4대강 공사 과정에서 담합을 했다며 과징금을 부과받자 2012년 9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금강 1공구와 1차 턴키공사 13개 공구 입찰과정에서 공구를 나눠갖기로 담합한 사실을 적발하고 삼성물산 등 8개 건설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총 1115억 원 상당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삼성물산은 이 가운데 103억8400만 원을 부과받았다.
다른 건설사들도 과징금 취소 소송을 냈으나 “이명박 정부가 담합을 묵인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은 삼성물산이 유일하다.
현대건설은 “대규모 다기능 보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설계 용역회사는 8개사에 불과해 애당초 경쟁이 이뤄지기 어려운 조건이었다”고 항변했다. SK건설은 “건설업계의 경영악화가 지속되는 사정을 고려해달라”고, GS건설은 “국책사업의 성공적 수행에 일조하는 등 국익에 기여한 점을 참작해달라”고 선처를 호소했을 뿐이다.
건설사들마다 소송에서 다른 대응을 한 것은 소송을 담당하는 법무법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현대건설은 세종이, SK건설과 대림산업은 김앤장이, GS건설은 율촌이, 대우건설은 화우가 각각 대리했다.
일부에서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이 박근혜 정부와 인연이 깊은 데다 4대강 공사에 비판적인 박근혜 정부의 기조를 감안해 삼성물산이 이명박 정부의 치부를 과감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의 부친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 때 멕시코대사 등을 역임한 최경록 전 교통부장관이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의 부친도 같은 시기 육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 취소 소송을 낸 건설사 가운데 7곳은 서울고법에서 모두 졌다. 이들은 모두 상소했다. 현대산업개발과 포스코건설 등 나머지 2곳은 오는 9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