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위원장은 “조선이 일본과 전쟁 없이 망했다”는 발언으로 식민사관 논란이 일었지만 사과 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또 북한의 핵 위협에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 폐기를 주장하고 나서는 등 강성 보수 진영을 겨냥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13일 대구 서문시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정부여당의 지지율 부진을 벗어나기 위해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 위원장은 1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현장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새로운 각오로 심기일전해서 새롭게 변하기 위해 보수의 중심인 대구·경북에서 첫 현장 비대위 회의를 개최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비대위 회의가 끝난 뒤 국민의힘 지도부와 함께 대구 서문시장에서 상인간담회를 열어 지역 민심을 들었다. 대구 서문시장은 보수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는 보수진영 정치인들의 단골 방문지다. 정 위원장의 이번 대구방문이 지지층 결집 의도로 풀이되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이 하락해 위기라고 평가되던 지난 8월 일정 유출 논란에도 서문시장을 방문해 “대구시민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이준석 전 대표도 국민의힘이 새로운 비대위 구성을 위해 움직이던 9월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연 바 있다.
최근 정 위원장은 친일 논란을 무릅쓰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한미일 군사훈련 비판에 대응했다. 또 북한 핵 위협에 전술핵재배치와 남북비핵화 합의 폐기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는 이날 대구·경북지역 언론인 간담회에서도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하고 연일 미사일을 퍼붓고 있는 엄중한 안보 상황에도 윤석열정부 헐뜯기에만 몰입하고 있는 민주당에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늘 당당하게 맞서 싸우겠다”며 “싸울대상이 누구인지는 여러분이 잘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의 강경한 자세를 두고 민주당과의 대립각을 세워 전통적 지지층인 대구·경북 지역 결집을 노리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정 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대구·경북 지역 출신 인사들이 당 지도부와 윤석열정부 요직에 두루 포진해있음을 언급했다. 윤석열정부가 대구·경북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 위원장은 “주호영 원내대표는 물론 김상훈 비대위원, 김석기 사무총장, 김용판 국민의힘 대구시당위원장, 양금희 수석대변인 등 내로라하는 대구·경북 출신 의원들이 (당에) 포진하고 있다”며 “정부에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관섭 등 대구·경북 출신의 기라성같은 인재들이 있지 않냐”고 말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진행한 인사 역시 대구·경북 지역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윤 대통령은 부총리급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김관용 전 경북지사를 임명했다. 이전에 부산·경남(PK) 인사인 김무성 전 의원이 내정됐다가 철회된 것으로 알려진 자리다.
또 노동계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장관급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발탁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대구·경북 출신이다.
이에 더해 정 위원장은 이날 비대위에서 대구 신공항특별법 제정, 군위군 대구광역시 편입 추진 등 대구·경북 지역 현안에 국민의힘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정부여당이 대구·경북에 공을 들이는 까닭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논란 이후 대구·경북에서도 정부여당 지지율이 주춤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조원씨앤아이가 1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TK 지지율은 52.7%로 부정평가(47.3%)와 오차범위 안이었다. 같은 날 알앤써치 여론조사에서도 TK지역의 긍정평가는 41.3%에 불과했다.
리얼미터가 1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힘 대구·경북 지지율이 49.5%로 일주일 전보다 4.3%포인트 하락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 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가 있기 직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민의힘의 뿌리는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뤄낸 사람들이다”라며 “위기의 순간마다 대구·경북은 우리 당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다”고 TK지역에 당을 향한 지지를 호소했다.
정 위원장이 대구·경북 민심 잡기에 나선 배경에 최근 당권을 놓고 펼쳐지는 국민의힘 내부 역학관계가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대구 출신으로서 비윤계로 분류되는 유승민 전 의원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당 대표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데다 신당 창당 가능성까지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유 전 의원은 최근 정 위원장의 발언을 강하게 비판하며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 "유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있을 때 내가 입당시켜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며 "유 전 의원도 당원이라면 당원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를 지켰으면 좋겠다"고 유 전 의원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