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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이미지. |
영화만큼 장르 구분이 다양한 예술장르도 없을 것이다. 서사를 기반으로 시청각적 장치가 총망라되는 종합예술이란 점에서 그렇다.
그렇다고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데 지나치게 장르구분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주제나 표현방식, 규모 등 어떤 잣대를 들이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영화들은 하나의 장르로 국한하기 어려운 혼성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재즈계의 전설적인 트럼펫 주자 쳇 베이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로버트 뷔드로 감독의 영화 ‘본 투비 블루’는 음악영화로 분류될 수 있겠다. 또 실제 인물의 삶을 다뤘다는 점에서 전기영화이기도 하다.
음악영화 혹은 전기(혹은 실화 소재)영화는 올해도 여러 편이 개봉해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싱 스트리트’도 16일 누적관객 53만 명을 돌파하며 다양성 영화 1위에 오르며 장기 흥행에 청신호를 켰다. ‘원스’와 ‘비긴 어게인’으로 국내에서도 흥행 저력을 과시한 존 카니 감독의 세번째 음악영화다.
싱 스트리트는 뮤직 밴드 멤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음악적 요소를 서사에 적극 활용한 음악영화이면서도 음악을 사랑하는 소년들의 성장기를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음악영화는 영화 속에서 연주되는 음악 자체의 매력도 중요하다. 음악과 서사가 시너지를 일으킬 때 관객의 감동도 커진다.
본 투 비 블루에도 ‘My Funny Valentine’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Over The Rainbow’ 같은 명곡들이 재즈 트럼펫 선율을 타고 흐른다. 재즈에 문외한이거나 쳇 베이커나 마일즈 데이비스 같은 재즈 뮤지션을 모른다 한들 어떠랴. 재즈 명곡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본 투 비 블루는 음악영화지만 실제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기영화란 측면에서도 흥미롭다. 또 재즈 쇠락기에 접어든 1950~1960년대 뉴욕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점도 색다른 볼거리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쳇 베이커라는 인물 그 자체와 그를 연기한 배우 에단 호크다.
재즈 역사에 정통한 이들은 쳇 베이커의 실화와 관련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듯하다. 쳇 베이커는 탁월한 재능을 바탕으로 재즈 역사에서 ‘웨스트코스트 재즈’의 지평을 열어젖히며 단숨에 신예스타로 떠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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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싱 스트리트' 포스터. |
그러나 그의 삶은, 영화에서도 일부 확인할 수 있듯 당대 정통 재즈의 대표주자 마일즈 데이비스에 대한 콤플렉스와 여성편력, 약물중독으로 순탄치 않았다. 그는 결국 재즈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지만 약물중독에 시달리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의문의 추락사로 생을 마감한다.
본 투 비 블루는 이런 쳇 베이커의 일생을 연대기 형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영화가 그리는 부분은 약물중독으로 투옥됐던 그가 석방되고 재즈 연주자로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과정까지다. 재즈 연주자로서 초창기 화려했던 나날은 그가 재기를 위해 출연하는 방식으로 ‘영화 속 영화’라는 액자구조로 잠깐씩 비쳐진다.
실제 쳇 베이커가 영화에 출연한 적도 없고 그의 재기를 돕는 여주인공 제인도 허구의 인물이란 점에서 정확히 표현하자면 팩션 전기영화인 셈이다. 쳇 베이커나 재즈 매니아에게 이런 점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실화와 허구를 비교해보는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쳇 베이커의 과거와 현재 시간을 오가며 흑백 영상과 톤 다운된 컬러 영상이 교차하는 것도 음울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영화 속 쳇 베이커의 손에서 떠나는 법이 없는 트럼펫 음색과 어울린다. 저무는 재즈의 시대, 화려한 무대에서 멀어진 연주자의 굴절된 인생과 어울리는 장면인 것은 물론이다.
에단 호크도 이 영화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에단 호크는 20대에 ‘가타카’, 20대와 30대에 걸쳐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 등과 같은 영화에서 불안한 청춘의 얼굴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이제 40대 중반도 훌쩍 넘겨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기성체제에 안주하지 않을 듯한, 불안한 청춘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성공한, 적어도 안정적인 중년이 아니라 중년에도 여전히 방황과 실패를 거듭하는 낙오자 혹은 패배자의 이미지를 짙게 풍긴다는 것이다.
에단 호크의 이런 이미지는 쳇 베이커의 역할과 싱크로율을 높이는 점으로 작용한 듯하다. 에단 호크는 이 영화 출연을 위해 실제 8개월 가량에 걸쳐 트럼펫 주법을 배웠다고 한다. 폭행사고로 치아가 부러지고 안면근육이 마비된 뒤에도 트럼펫 연주와 재즈를 포기하지 않았던 쳇 베이커의 음악적 열정과 닮은 셈이다.
음악은 듣는 이를 위로하고 때로 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예술가로서 음악인의 삶은 고통스럽고 불행한 경우가 많다. 영화는 쳇 베이커의 실제 삶이 그랬듯이 ‘기승전-해피엔딩’같은 헐리우드 영화의 관습을 보기 좋게 배반해 더욱 공감하게 한다.
예술가들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도 영화 속 에단 호크가 마지막 장면에서 읊조린 것처럼 ‘Born to be Blue’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