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칩4동맹, 성주 사드기지 정상화, 펠로시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 등 한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다.
저번 영상까지 두 편에 걸쳐 지정학적 리스크 속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행보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는데, SK하이닉스의 대응 방안은 당연히 삼성전자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두 회사가 보유한 기술력의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삼성전자나 TSMC처럼 최첨단 초미세공정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레거시 공정, 8인치 파운드리 분야에서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이 디지털 진영화 속에서 각각 원하는 것은 간단하다. 중국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을 원하고 미국은 중국으로 기술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SK하이닉스의 전략은 삼성전자와 정반대로 가게 된다. 특별한 기술력보다 소비처와의 거리가 중요한 8인치 파운드리 공장은 중국에, 그리고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메모리반도체 공장은 미국에 배치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경쟁 상대는 삼성전자처럼 TSMC가 아니라 값싼 인력으로 무장한 중국 파운드리 기업들이다.
SK하이닉스로서는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을 위해 물류에 낭비되는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토지와 인력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아끼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8인치 파운드리에 집중하는 이유를 두고 “굳이 최첨단 초미세공정을 이용할 필요가 없는 국내 팹리스들의 시스템반도체 제조를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측면에서도 8인치 파운드리 공장을 중국 쪽에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국내 팹리스 업체들의 주요 수요처도 중국쪽에 몰려있기 때문에 국내 중소 팹리스들의 중국 진출을 뒷받침하는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 사업에서 삼성전자와 비견될만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국은 첨단 반도체 관련 기술 이외의 기술에 대한 중국으로의 판매는 허용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바꿔 이야기하면 첨단 반도체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미국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SK하이닉스가 최첨단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중국에 건설하게 된다면 SK하이닉스로서는 미국의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8인치 파운드리와는 다르게 중국 투자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SK하이닉스의 최첨단 메모리반도체 공장 투자는 미국을 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청주에 있던 8인치 파운드리 공장을 중국 우시로 옮겨 8인치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반면 미국에는 내년 1분기에 최첨단 메모리반도체 패키징(후공정)공장을 착공할 것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아무리 8인치 파운드리라고 하더라도 중국에서 생산기지를 마구 늘릴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서명해 효력이 발생한 반도체 지원 법안에 따르면 미국 정부에서 혜택을 받은 기업은 중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증설하거나 최신 공정기술을 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상유지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8인치 파운드리는 최신 공정기술과 큰 관련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크게 반발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SK하이닉스가 중국에 투자를 못한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반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중국이 내수시장에서 제조업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반도체를 한국 등에서 수입해 조달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중국이 한국 반도체기업 등을 대상으로 보복에 나설 만한 수단은 제한적일 수도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도 계속해서 최적의 투자방향을 찾아 나가고 있다"며 "지금 반도체 업계의 상황과 관련해 사이클이 끝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이제 반도체 업계는 사이클보다 꾸준하게 투자를 늘려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