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관계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완화법 시행을 계기로 중국을 세계 주요 산업에서 고립시키려는 전략에 속도를 내면서 한국도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기 갈수록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완화법에 잇따라 서명하며 강력한 인센티브를 약속한 만큼 한국이 자연히 미국과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관영매체 CGTN은 17일 논평을 내고 “한국의 칩4 동맹 가입 여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한국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조심스러운 계산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CGTN은 한국이 미국 주도 칩4 연합체에 참여하는 일은 ‘경제적 자멸’을 불러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한국의 반도체 최대 수출국이라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한국이 경제적 악영향을 무릅쓰고 중국을 적대시하게 될 수 있는 외교적 행보를 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미국이 주도하는 칩4 동맹은 일본과 대만, 한국을 포함한 4개 국가가 반도체산업에서 힘을 합쳐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겠다는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칩4 예비회의 참여 등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에서 미국과 중국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기보다 한국의 이해관계 및 국익을 최우선으로 두는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CGTN은 한국의 칩4 동맹 가입이 중국에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중국이 한국 반도체 수입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중국이 자체 반도체 기술력을 통해 한국산 반도체 수입을 점차 대체해 나가면서 다른 분야에서도 한국과 교역을 점차 축소해 관계를 점점 더 멀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칩4 연합체 가입 검토가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국 정부 측에 경제적 보복을 막기 위한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CGTN은 미국 정부가 결국 한국에 중국과 교역 축소를 압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CGTN은 “한국이 중국과 관계에 부적절한 태도를 보인다면 양국 사이 신뢰는 무너지고 말 것”이라며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노림수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을 더욱 가까이 하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정부가 최근 반도체 지원법 및 인플레이션 완화법을 모두 시행하기로 확정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데 따른 막대한 인센티브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 |
조 바이든 대통령이 현지시각으로 17일 서명한 인플레이션 완화법은 친환경 분야에 500조 원 넘는 예산을 지원하는 계획을 담고 있다. 이는 한국 전기차 및 배터리업체, 관련 협력사들에 모두 수혜로 돌아올 수 있다.
그가 8월 초 서명한 반도체 지원법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과 관련 소재업체 등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며 대규모 보조금 및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가지 법안은 모두 지원 대상 기업이 중국에 투자를 축소하거나 중국산 소재 수입에 의존을 낮춰야만 하는 조건을 담고 있다.
결국 미국 정부가 막대한 인센티브를 앞세워 한국 기업들이 중국과 거리를 두고 미국과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정부가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찾기 어렵다. 결국 한국 기업들이 미국 진출을 확대하며 자연히 한국과 미국의 관계도 더욱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관계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이 실현될 가능성은 사실상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 니케이아시아는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은 사실상 손이 묶여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중국이 아닌 미국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으면서 중국에서도 계속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확실하게 한 쪽 편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이는 미국과 협력 관계가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니케이아시아는 “중국 정부가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세계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