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해 노조와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성과연봉제 도입에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4일 KDB산업은행에 현직 의원과 20대 총선 당선인 11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을 보내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불법행위 등을 현장조사한다고 23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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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
진상조사단의 단장을 맡은 한정애 의원은 “산업은행이 직원들을 개별적으로 면담해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면 국책은행의 임무를 저버린 것”이라며 “노사 양쪽의 당사자를 만나 사실 여부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17일 이사회를 열어 직원들로부터 개별적으로 받은 동의서를 근거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다. 그러나 산업은행 직원들 가운데 70%가 가입한 노동조합과 사전에 합의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근로기준법 94조는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노동조합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근로자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산업은행 외에 한국자산관리공사·신용보증기금·주택금융공사도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했다. IBK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한국수출입은행·한국예탁결제원 등 4곳도 조만간 이사회를 열어 성과연봉제 도입 안건을 상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진상조사단은 당내 노동위원회와 협업해 금융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행위를 수집해 대응방안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도 20일 제1차 여야정 민생경제점검회의에서 금융공공기관 등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면 합법적인 절차 아래 노사합의를 해야 한다는 데 더불어민주당과 의견을 모았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회의 직후 “성과연봉제에 대해 지난해 노사정 합의에 맞춰 기준을 마련하고 도입 과정에서 노사합의를 해야 한다”며 “여야에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데 강압과 불법 논란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밝혔다.
여야가 노사합의를 강조하면서 정부의 성과연봉제 도입 드라이브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5월 말까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은 금융공공기관 임원진의 연봉을 삭감하기로 결정하는 등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은 20일 성명서에서 “청와대는 정부와 여야 3당의 합의를 존중해 금융공공기관에 대한 성과연봉제 도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금융공공기관도 강압과 불법행위를 중단하고 금융산별 중앙교섭에 복귀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여야 측 인사들에게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때 불법과 탈법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9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며 금융공공기관 노조를 강하게 비판한 데에서 다소 물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바탕으로 금융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고삐를 계속 죌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찮다. 박 대통령은 6월9일로 예정된 금융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점검 워크숍에 참석하기로 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근 금융공공기관에서 노사합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는데 이 말이 정부의 입장일 것”이라며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뒤 법정에서 도입 과정의 불법 여부를 검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