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소프트뱅크가 자회사인 반도체 설계회사 ARM의 상장 뒤에도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수준의 지분율을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ARM 매각 가능성을 아직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으로 읽히는 만큼 인수 의사를 타진했던 SK스퀘어 또는 SK하이닉스에서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22일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소프트뱅크가 ARM을 상장하는 과정에서 기존 계획보다 적은 지분을 시장에 내놓는 방안을 비공개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까지 ARM을 엔비디아에 매각하려 했지만 이런 계획이 독점금지 규제에 부딪혀 무산되자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고 미국 나스닥시장에 기업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다른 인수 후보자를 찾아 ARM 재매각을 추진하는 대신 상장을 통해 소프트뱅크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블룸버그가 보도한 내용대로 소프트뱅크가 ARM 상장 과정에서 내놓는 지분을 줄인다면 기업공개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 규모도 그만큼 축소될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소프트뱅크는 현재 증시에서 반도체 관련주가 전반적으로 하락한 만큼 ARM이 나중에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계획을 변경했다”고 보도했다.
소프트뱅크가 ARM 상장을 추진하는 동시에 다른 기업에 ARM 매각을 다시 추진할 계획을 염두에 두고 경영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ARM을 인수하는 기업이 경영권을 확보하기 충분한 만큼의 지분을 소프트뱅크에서 사들일 수 있어야 매각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는 이미 JP모건 등 금융기관에서 ARM 지분을 담보로 80억 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조달해 ARM 상장 규모를 축소해도 안정적 재무구조를 갖출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ARM 상장 시기는 내년 1분기로 예정되어 있는데 이는 앞으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소프트뱅크가 ARM 인수 후보자들과 논의하는 내용이 상장 규모와 시기에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ARM을 인수할 만한 가장 유력한 후보는 SK하이닉스 또는 SK그룹 투자회사인 SK스퀘어로 꼽힌다.
박정호 SK스퀘어 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ARM 인수를 추진할 뜻이 있다며 SK하이닉스나 SK스퀘어가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이후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ARM 공동인수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대답하며 인수 추진에 확실한 의사를 내놓았다.
▲ 박정호 SK스퀘어 대표이사 부회장 겸 SK하이닉스 각자대표이사 부회장. |
소프트뱅크가 SK그룹과 ARM 매각에 관련해 초기 논의를 진행하면서 상장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ARM은 애플과 삼성전자, 퀄컴, 미디어텍 등 글로벌 주요 시스템반도체기업의 모바일프로세서에 쓰이는 기초 설계기반을 제공한다.
SK하이닉스가 ARM을 인수한다면 이들 고객사에 메모리반도체 공급을 확대하는 등 협력을 강화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와 증강현실기기, 사물인터넷기기 등으로 ARM 설계기반을 활용하는 반도체의 수요처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성장 전망에 긍정적이다.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이 ARM의 기업가치 상승에 높은 기대를 걸고 있는 만큼 인수 가격 등 조건을 두고 원활한 협상이 이뤄진다면 본격적으로 매각이 추진될 수 있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ARM을 320억 달러에 인수하는 과감한 투자를 벌였다.
그러나 이후 소프트뱅크가 기술 전문 투자펀드 ‘비전펀드’를 통해 투자한 기업들의 주가가 대체로 하락세를 보이면서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지자 엔비디아에 ARM 매각이 추진됐다.
엔비디아는 400억 달러에 ARM을 인수하려 했지만 미국 등 전 세계 주요 국가의 독점금지 규제에 부딪혀 인수에 실패하면서 소프트뱅크의 자금 확보는 더욱 다급해졌다.
손 회장이 소프트뱅크 상장으로 자금 조달 전략을 선회한 상황에도 다른 기업에 매각 기회를 계속 엿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다만 블룸버그 등 외국언론 보도에 따르면 손 회장이 소프트뱅크의 잠재적 성장성을 반영해 기업가치를 600억 달러 이상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 향후 매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ARM 지분을 일부만 인수한다고 해도 수십조 원 단위의 자금이 필요한 만큼 SK그룹 등 잠재적 인수후보 측에서 상당히 과감한 수준의 투자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가 ARM을 상장한다고 해도 경영권을 유지하기 충분한 지분을 보유한다면 내년 초 상장 이후에도 ARM 인수 의사를 보이는 후보자들과 다양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