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솔 기자 limhs@businesspost.co.kr2022-02-21 15: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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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년까지 아프리카 백신 수요의 60%를 충족하는 것이 목표다. 모로코는 그보다 훨씬 앞서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모로코의 백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샘 맥아워(Samir Machhour) 삼성바이오로직스 품질운영센터장 부사장이 현지시각 20일 모로코 매체 미디어24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 샘 맥아워 삼성바이오로직스 품질운영센터장 부사장.
맥아워 부사장은 “모로코는 2023년 말까지 아프리카가 가장 필요로 하는 백신 5가지에 대한 수요의 최소 60%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아프리카 국가들로 구성된 아프리카연합(AU)은 2040년까지 아프리카 백신 60%를 자체 생산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모로코의 로드맵은 이보다 훨씬 빠르다.
모로코는 현재 모하메드 6세 국왕의 주도로 백신 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중이다. 4억~5억 유로(약 5400억~6800억 원) 규모에 이르는 투자를 통해 2025년부터 연간 20억 도즈 이상의 백신을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맥아워 부사장은 모로코 백신 프로젝트를 이끄는 인물 중 하나다.
모로코는 백신사업을 위해 지난해 10월 글로벌 합작법인 센쇼파마테크SA(Sensyo Pharmatech SA)를 설립했다. 합작법인에는 모하메드6세투자펀드, 스웨덴 백신기업 레시팜, 뱅크오브아프리카, 아티자리와파은행 등이 참여했다. 맥아워 부사장은 이런 기업 및 투자기관들과 함께 센쇼파마테크SA의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센쇼파마테크SA 안에서 맥아워 부사장의 직책은 경영위원회 위원(membre du comité de direction)으로 파악된다. 제약바이오업계 전문가로서 역량을 활용해 백신사업의 전반적 추진과정을 점검하고 장기 비전을 세우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맥아워 부사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노력에 힘입어 모로코의 백신 공장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프로젝트가 발표된 것은 지난해 7월로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첫걸음인 백신 완제 공장(Lion 1)은 이미 공정이 60%가량 진척됐다. 건설 속도를 높이기 위해 중국에서 청정실(클린룸) 등 주요 설비의 조립이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완제 공장은 액상 바이알, 동결건조 바이알, 사전충전형 주사기(BFS) 등 3가지 생산라인으로 구성된다.
맥아워 부사장은 인터뷰에서 “액상 바이알과 동결건조 바이알의 첫 번째 테스트 배치(생산단위)는 7월 말까지 생산되고 사전충전형 주사기는 8월 말 준비될 것이다”며 “모로코는 올해 말까지 백신 6억~10억 도즈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백신 완제 공장에 뒤이은 원액 공장(Lion 2)은 올해 착공, 2023년 완공이 예정됐다. 이 공장에서 소아마비 백신, 소아 및 성인 B형간염 백신, 폐렴구균 백신, 홍역 백신 등 현지 수요가 높은 핵심 백신 최대 20여 종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맥아워 부사장은 “모로코는 더이상 백신을 100% 수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국왕 폐하는 백신과 건강의 주권을 원하신다”고 강조했다.
▲ 모로코 백신사업 합작법인 센쇼파마테크SA 참여자 명단. 샘 맥아워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사장의 이름이 올라 있다. <모로코 경쟁당국(Le conseil de la concurrence) 보도자료>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일각에서는 맥아워 부사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소속이라는 점을 들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로코에 투자하려는 의향이 있지 않느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따르면 적어도 현재까지는 모로코 백신 프로젝트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관계가 없다. 회사와 무관하게 맥아워 부사장이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맥아워 부사장이 모로코의 ‘백신 자립’에 힘을 보태는 이유는 그의 모국이 모로코라는 점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맥아워 부사장은 1963년 모로코 수도 라바트에서 태어난 뒤 케니트라, 아즈루 등 다른 모로코 도시들을 오가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후 유학길에 올라 캐나다 몬트리올대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콘코디아대에서 핵물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기업인으로서 경력은 더욱 ‘국제적’이다.
맥아워 부사장은 글락소스미클린, 화이자, 존슨앤존슨, 베링거잉겔하임, 벡톤디킨슨, 론자 등 글로벌 제약사에서 연달아 중책을 맡았다. 특히 론자에서 2016년 의약품용 캡슐 제조업체 캡슈겔을 55억 달러에 인수할 당시 인수를 주도하기도 했다. 2019년 6월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일하고 있다.
맥아워 부사장은 평소 조국인 모로코에 대해 각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20년 5월 모로코 매체 챌린지(Challenge)와 인터뷰에서 “모로코 아즈루에 있는 타리크이븐지야드 고등학교는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내 여생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며 “내가 어디에 있든 모로코는 내 조국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맥아워 부사장은 이번 백신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이전부터 모로코를 물밑 지원했다. 특히 코로나19 백신이 막 상용화하던 2020년 말~2021년 초 백신 초기 물량을 확보하는 데 공을 세웠다.
▲ 샘 맥아워 삼성바이오로직스 전무가 2020년 12월 모로코 메드라디오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Kifache TV 갈무리>
모로코는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경제적으로 상위권에 속하지만 다른 선진국과 코로나19 백신 물량을 놓고 경쟁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맥아워 부사장은 2020년 12월 아스트라제네카와 접촉해 모로코에 코로나19 백신 물량을 배정하도록 요청했다. 그 결과 모로코는 2021년 1월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공급받는 데 성공했다.
모로코월드뉴스는 맥아워 부사장을 두고 “그는 코로나19와 싸움에서 활약한 모로코의 알려지지 않은 영웅 중 한 명이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한 것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백신을 비롯한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아프리카의 특성상 제2, 제3의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날 경우에도 스스로 대처하기 어려울 공산이 컸다.
맥아워 부사장이 모로코를 기반으로 아프리카의 백신 주도권을 확립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까닭이다.
맥아워 부사장은 백신 프로젝트가 발표된 2021년 7월 개인 SNS를 통해 “아프리카 대륙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행동과 백신 생산능력 건설이다”며 “아프리카는 시민들의 의료 문제에 자체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