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현 기자 naforce@businesspost.co.kr2022-01-24 14: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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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에너지솔루션의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 마감일인 2022년 1월19일 서울 여의도 신한금융투자 영업부에서 고객들이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자본시장에서 개미투자자에게 불리한 물적분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거나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를 우선 배정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LG화학에서 물적분할한 LG에너지솔루션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을 앞둔 동시에 포스코와 세아베스틸까지 물적분할하겠다고 밝히면서 각 기업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 기업의 물적분할, 왜 문제가 될까
지주사 전환을 위해 28일 임시 주주총회를 여는 포스코는 물적분할한 사업회사를 상장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소액주주들은 아직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사업회사 상장을 위해서는 사전에 주주들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조항을 정관에 넣어놨지만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정관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우진 포스코 소액주주모임 대표는 11일에 열린 ‘포스코 물적분할 규탄 집회’에서 “자회사 비상장 계획은 언제든 바뀔 가능성이 있고 물적분할이 이어지면 포스코 주가는 더 희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적분할이 주주들에게 비판을 받는 이유는 사업체는 한 곳인데 두 곳의 상장사에서 가치가 매겨지는 이른바 ‘더블카운팅’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천억 원의 기업가치가 있는 상장사 A가 500억 원의 가치가 있는 사업회사 B를 물적분할해 상장하면 사실 기업가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1천억 원+500억 원'으로 부풀려 평가받게 된다.
이와 같은 '더블카운팅'을 막기 위해 상장사 A기업의 가치는 할인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 때 기존 A기업 주주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한 '기업집단'에서 지주사 한 곳만 상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의 애플은 시가총액이 2조6528억 달러(약 3166조 원)로 우리나라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을 뛰어넘고 스마트폰, PC, 플랫폼, 반도체설계 등 다양한 사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뉴욕증시에는 애플 하나만 상장돼 있다.
구글도 포털, 유튜브, 클라우드 등 다양한 사업을 하지만 지주사인 알파벳만 상장돼 있고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도 마찬가지다.
증권업계 전문가들도 국내 기업들의 기업분할 및 상장과 관련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장효선 삼성증권 글로벌주식팀장은 17일 ‘애플의 성장은 오롯이 애플 주주에게’라는 글에서 “기업이 분할됐을 때 그룹 전체적으로 보면 이러한 선택이 옳은 것으로 결론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여한 모회사 주주 입장에서는 주주가치가 희석되는 사례가 많다”며 “반면 애플의 성장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애플 주식을 보유하면 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모회사가 지분율 50% 이상을 보유한 자회사를 같이 상장한 사례는 0.52%에 불과하다.
미국이 법에 명시적으로 물적분할한 자회사를 상장하는 것을 금지하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해상충 등의 문제로 천문학적 규모의 민사소송 등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고 있는 것이다.
한 기업이 물적분할을 한다면 모회사와 자회사, 기존주주와 신규주주, 성장부문과 현금창출원 사이의 이해상충 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는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등은 모두 카카오의 카카오톡 메신저를 기반으로 돈을 벌기 때문에 카카오 주주들 입장에서는 카카오뱅크가 내는 수익의 일부는 카카오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며 “결국 최대 주주가 유리한 쪽으로 정하게 되는데 이 때 각 회사 주주들의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재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서는 기업이 분할할 때 이사회 결의에 반대하는 주주에게 해당 법인에 자신의 소유 주식을 매수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자본시장법 시행령 176조의7에 따라 물적분할은 주식매수청구권 인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분할에 따른 기업의 가치나 주식에 변동이 없기 때문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존 주주에게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물적분할 때 모회사와 자회사를 동시 상장하는 것을 금지하고 모회사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주자”고 제안했다.
자회사가 상장할 때 모회사 주주에게 보유지분에 비례해 신주를 우선 배정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자회사 상장으로 생기는 과실을 기업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회사 소액주주에게도 나눠줌으로써 제도의 문제점을 최대한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물적분할 뒤 자회사가 상장 때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신주인수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공모주 우선 배정을 위해서는 증권인수업무 규정을 수정하고 주식매수청구권 부여를 위해서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기업이 물적분할을 하더라도 자회사 상장을 5년 동안 막는 식의 규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기존 모회사 주주들은 일정 기간 주주가치가 희석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주식 매도를 결정할 시간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가 기업의 물적분할을 까다로운 조건에서만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대표이사 겸직 금지, 주주 사이의 계약에 따른 일반주주 이익 침해, 경영조직의 독립성 등을 철저히 검토해서 물적분할을 허용하는 방법 등을 고려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송영훈 한국거래소 상무는 6일 한국거래소 콘퍼런스홀에서 열린 ‘모자회사 쪼개기 상장과 소액주주 보호-자회사 물적분할 동시 상장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세계적으로 모자회사 동시 상장 금지의 규제는 찾아볼 수 없다”며 “상장심사 때 기존 주주를 위한 보호책과 소통 여부를 면밀히 따지는 등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