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놓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서 불허결정을 내놓으면서 차선책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KDB산업은행은 EU의 불승인 결정 직후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간 기업결합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는 점을 짚으면서 새로운 인수의향자를 물색하는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태도를 내비쳤다.

14일 조선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 잠재후보로 포스코, SM그룹, 효성그룹 등이 거론되는데 특히 한화그룹을 주목해야 한다는 시선이 나온다.

◆ ‘인수합병의 대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승부사 기질 발휘할까

한화그룹을 대우조선해양의 새 인수후보로 보는 견해의 근거로 우선 김승현 회장의 과거 다양한 인수합병 이력이 꼽힌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잠재후보 한화, 김승연 승부사 기질 다시 주목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그동안 굵직한 인수합병을 성공적으로 성사시켜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승부사 면모를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과거 한양화학(현 한화케미칼), 대한생명보험(현 한화생명) 등을 인수했다.

특히 2002년 대규모 적자를 내던 대한생명보험을 인수했을 때는 직접 대표를 맡은 뒤 경영 정상화까지 무보수경영을 선언했고 결국 6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또한 2015년 이후에는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삼성토탈(현 한화토탈), 삼성종합화학(현 한화임팩트), 두산DST(현 한화디펜스) 등을 사들여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더구나 한화그룹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이력이 있다.

당시 현대중공업과 포스코, GS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입찰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인수가격으로 6조3천억 원 가량을 써낸 한화컨소시엄(당시 한화석유화학·한화·한화건설 등)이 선정됐다.

하지만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한화컨소시엄은 자금난에 부딪혔고 고육지책으로 분할납입을 제안했지만 산업은행은 수용하지 않았다.

◆ 한화,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2008년 금융위기가 한화를 살렸다.” 2010년대 중반 대우조선해양이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을 무렵 재계에서 나온 말이다.

2008년 당시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더라면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한화가 고스란히 떠안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잠재후보 한화, 김승연 승부사 기질 다시 주목

▲ 한화 로고(위쪽)와 대우조선해양 로고.


대우조선해양은 2016년 감사원과 검찰조사에서 대규모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였다. 2012년~2014년 3년 간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규모가 5조7천억 원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이 조선업황이 정점에 다다랐던 2008년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던 판단은 결론적으로 틀린 셈이 됐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때와 많이 다르다.

조선업황이 확실한 기반을 다지고 다시금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현준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국내 조선3사(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는 2023년에는 손익분기점(BEP) 이상의 영업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며 업황과 추세를 고려할 때 2024년부터 수익성 개선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바라봤다.

김 연구원은 “전세계적으로 빨라지는 탄소중립 흐름에 따라 선박 교체수요가 확대될 것은 확실하며 사업경쟁력에서 선두권에 있는 국내 조선3사가 그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화그룹 역시 실적 상승흐름을 타고 있어 인수를 결단하면 자금조달에 문제가 없어보인다.

IBK투자증권은 한화그룹 지주회사 격인 한화만 해도 올해 연결기준으로 영업이익 2조7190억 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2020년 이후 2년 동안 영업이익이 70%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한화그룹은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친환경 흐름과 우주발사체개발과 관련된 강력한 정책적 드라이브 등 우호적 환경 속에서 주력 계열사의 실적 개선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바라봤다. 그런 만큼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자금을 조달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시선이 많다. 

다만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선다면 강성 노조를 마주해야 한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구조조정을 우려해 2008년 한화그룹이 인수합병과 관련해 실사를 추진할 때나 2019년 현대중공업그룹이 실사를 추진할 때에도 이를 막은 바 있다.

다만 한화그룹은 현재 오너3세인 김동관 한화 전략부문장 겸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대표이사 사장이 경영승계 절차를 준비하는 상황인 만큼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에서 노사관계 부담이 불거져 사회적 이목을 받는 일을 부담스러워 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 방위산업 측면에서 대우조선해양과 한화 시너지도 날 수 있어

대우조선해양은 단순히 배를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군함과 잠수함 등 방산물자를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1987년 장보고-I 사업의 첫 번째 함정인 '장보고함'을 수주한 이래 현재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은 22척의 잠수함(209급 9척, 214급 3척, 3,000톤급 4척, 수출 잠수함 6척)을 수주했다. 이중 16척이 성공적으로 인도됐고 2021년 9월 기준 6척이 건조 중이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잠재후보 한화, 김승연 승부사 기질 다시 주목

▲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3천 톤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대우조선해양>


이뿐만 아니라 한국형 경항공모함(CVX), 차세대구축함(KDDX)과 같은 첨단 함정의 효과적인 운용을 위해 필요한 기술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방산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매각과정에서 이와 같은 방산기업으로서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시선이 나온다.

한화그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국 방위산업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게 되면 시너지를 기대해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산업은행을 비롯한 정부 차원에서도 이 점을 정무적으로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또다른 인수후보군으로 지목되고 있는 포스코그룹이나 효성그룹, SM그룹도 기존 사업과 연계성을 찾아볼 수 있지만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곳으로 한화그룹을 꼽는 의견이 많다.

다만 한국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로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인수주체로 역시 한화그룹이 거론되는 만큼 산업은행이 한화그룹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협상을 벌이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현재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 문제를 놓고 선을 긋고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관련해 말씀드릴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