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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정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대표. |
수입차회사에 최근 들어 한국인 CEO가 다시 늘고 있다.
수입차회사의 경우 출범 초기 현지인에게 대표를 맡기다가 어느 정도 시장에서 자리를 잡으면 본사에서 대표를 보낸다.
과거 국내 수입차시장이 급속도로 커질 무렵 본사에서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한국인 CEO들이 줄줄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당시 이를 놓고 ‘토사구팽’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인 CEO가 다시 늘고 있다. 국내 수입차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판매부침도 거듭하다 보니 현지사정을 잘 알는 한국인이 변화에 대처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한국인 CEO 다시 약진
8일 수입차업계에 따르면 수입차회사 가운데 한국인 CEO가 이끄는 회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올해 사상 처음으로 1만 대 판매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판매량은 9975대로 2014년보다 약 50% 증가했다.
백정현 대표는 지난해 4월부터 전임 데이비드 맥킨타이어 사장의 뒤를 이어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를 이끌고 있다. 데이비드 맥킨타이어 전임 사장은 재규어랜드로버의 본사가 있는 영국 출신이었다.
백 대표는 25년 동안 국내외 자동차회사에서 영업과 마케팅, 고객관리 등 모든 분야를 두루 거친 전문가다. 그는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를 거쳐 2000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애프터서비스(AS) 매니저로 입사했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올해 판매목표를 지난해보다 60% 이상 높여 잡았다. 1만6천 대 이상을 팔아 수입차 판매 상위권에 진입하겠다는 것이다. 내부적으로 1만7천 대 판매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임러트럭코리아 대표도 한국인이다.
조규상 대표는 전임 라이너 게르트너 대표의 뒤를 이어 지난해 7월 취임했다. 그는 2005년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에 입사해 서비스운영과 신차인증 업무에서 성과를 인정받았다. 2013년 3월 서비스&파트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인피니티코리아도 이창환 대표가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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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환 인피니티코리아 대표가 6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6 인피니티 디자인 나이트'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한국닛산은 지난해 고급브랜드 인피니티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인피니티코리아를 설립하고 이창환 대표를 인피니티코리아 총괄대표에 앉혔다.
이 대표는 얼마 전 “10년 안에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를 따라잡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수입차회사들이 한국인 CEO의 기용을 늘리는 이유는 한국시장의 특색에 맞는 전략을 펼치기 위해서다.
한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중국과 더불어 가장 큰 자동차시장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동안 수입차회사들은 애프터서비스나 사회공헌에 소홀하고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앞으로 한국인 CEO를 통해 판매량을 늘리면서 그에 걸맞은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이미지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수입차업계에서 한국인 CEO가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인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이 대표적이다.
정재희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회장은 한국인 CEO가 늘어난 데 대해 “그만큼 한국시장이 중요해지고 이들에 대한 수입차 본사의 신뢰가 높아졌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정 회장은 한국인 CEO들이 그동안 돈벌이에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던 수입차회사의 질적성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외국인 CEO 고집하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여전히 외국인 CEO를 고집하는 곳도 있다. 그리스 출신인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사장이 이끄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대표적이다.
특히 전임 브리타 제에거 사장이 맹활약을 펼친 데 이어 실라키스 사장도 성과를 내면서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의 외국인 CEO 선임 기조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올해 1분기까지 누적 판매량에서 BMW코리아를 큰 격차로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브리타 제에거 전 사장은 지난해 8월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났다. 수입차업계 최초의 외국인 여성 CEO였던 제에거 전 사장은 메르세데스-벤츠의 높은 판매 성장세를 이끌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지난해 3조 원이 넘는 매출을 거뒀다. 수입차 단일 브랜드 가운데 최초로 매출 3조 원을 돌파했다.
외국인 CEO의 장점으로 물량확보에 유리하다는 점이 꼽힌다. 본사 출신이다보니 본사와 협력이 원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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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 |
그러나 외국인 CEO는 단기실적 위주로 회사를 경영하고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시장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인 CEO가 이끄는 수입차회사들은 사회공헌에 인색하고 고용효과를 유발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지난해 585억5850만 원을 배당했다. 2014년보다 2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 배당금은 독일 다임러AG(51%)와 홍콩 레이싱홍그룹의 국내 투자회사인 스타오토홀딩스(49%)로 흘러갔다.
반면 지난해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의 기부금은 20억 원 수준에 그쳤다. 재단까지 설립하며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는 BMW코리아와 대조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인 CEO가 한국시장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사회공헌에 충실한 건 사실”이라며 “외국인 CEO는 어차피 몇 년 뒤에 떠나기 때문에 한국시장에 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 CEO들에게 한국시장은 성공적 실적을 바탕으로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다. 많은 외국인 CEO가 한국시장에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더 큰 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브리타 제에거 전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이 대표적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