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효 기자 kjihyo@businesspost.co.kr2021-10-22 17: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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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배 제주항공 대표이사가 인천과 싱가포르를 오가는 비행기를 띄울 수 있을까?
한국과 트래블버블 협약을 맺은 싱가포르의 여행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싱가포르를 오가는 노선을 취항하기 위해 항공사들이 공을 들이고 있다.
▲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이사 부사장.
김 대표는 인천~싱가포르 노선 취항을 통해 재무적 위기를 맞은 제주항공의 숨통을 틔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것으로 보인다.
22일 항공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제주항공은 최근 국토교통부로부터 인천~싱가포르 노선의 운항허가를 받고 이 노선에 취항을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로부터 운항허가를 받으면 싱가포르 공항의 슬롯(항공기를 띄울 수 있는 횟수)을 확보한 뒤 운항 일시를 결정하고 최종 운항 허가를 받으면 취항할 수 있다.
문제는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슬롯이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인기가 많아 슬롯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아시아 최대의 허브공항 가운데 하나다. 영국의 항공 전문 조사기관인 OAG가 발표한 ‘2019 세계 메가허브공항 톱50’ 순위에서 세계 8위, 아시아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해외항공 수요가 줄기는 했지만 싱가포르가 최근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과 부르나이, 영국, 캐나다, 덴마크,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미국 등 11개 나라에도 트래블버블 협약을 통해 빗장을 풀고 있어 창이공항의 슬롯이 여유가 많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트래블버블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방역이 우수한 나라들이 서로 여행을 허용하는 협약을 말한다. 이 협약을 체결한 나라들 사이에서는 입국자를 대상으로 2주 동안의 자가격리가 면제되는 등 입국 제한조치가 완화된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창이공항은 항상 슬롯의 여유가 없다”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인천~싱가포르 노선을 계속 운항하고 있었지만 저가항공사(LCC)들은 이 노선을 새로 취항해야 하기 때문에 슬롯을 확보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항공이 인천~싱가포르 노선의 슬롯을 받지 못한다면 김 대표는 코로나19 이전에 운항하던 부산(김해공항)~싱가포르 노선의 슬롯을 전환하는 방법을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
제주항공은 2019년 7월 부산~싱가포르 노선에 취항한 뒤 2020년 3월까지 운항하다가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운항을 중단한 바 있다.
김해공항은 아직 국제선을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부산~싱가포르 노선이 정상화하기까지는 당분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20년 4월부터 국내에 입국하는 항공편의 인천국제공항 일원화정책을 이어오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김해공항은 2020년 10월부터 주1회 에어부산이 운행하는 부산~칭다오 노선 1개만 운항하고 있다.
김 대표로서는 싱가포르 노선의 취항이 더 간절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트레블버블 협약을 맺은 사이판에는 이미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여행수요의 회복세가 입증된 데다 단체관광객만 허용한 사이판과 달리 싱가포르는 개인여행도 가능해 항공사가 직접 승객들에게 항공권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노선은 싱가포르와 동남아 관광객 수요까지 확보할 수 있는 ‘황금노선’으로 여겨져 코로나19 이전부터 국내 저가항공사들이 앞다퉈 취항하려고 했던 노선이기도 하다.
제주항공은 중거리 운항이 쉽지 않은 B737-800 항공기로 부산~싱가포르 노선을 운영하기 위해 기존 189석의 좌석을 174석으로 축소해 항공기 무게를 줄여 비행기를 띄워왔을 만큼 싱가포르 노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부산~싱가포르 노선은 제주항공이 취항하는 노선 가운데 거리가 가장 길다. 비행거리 4600㎞, 운항시간은 약 6시간 정도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 제주항공의 부산~싱가포르행 항공편 탑승률은 2019년 7월 84.12%, 2019년 8월 87.41%에 이르기도 했다.
인천~싱가포르 노선의 평균 탑승률은 90%에 이르러 항공사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노선이다.
이번에 인천~싱가포르 노선에 취항하면 앞으로 코로나19 이후에도 해당 노선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김 대표로서는 이번 인천~싱가포르 운항을 위한 슬롯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에게 제주항공의 실적회복은 절실하다.
제주항공은 2020년 연결기준으로 매출 3770억 원, 영업손실 3358억 원을 봤다. 2019년보다 매출은 72.2% 줄었고 영업손실을 보면서 적자를 이어갔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10월부터 여객기 내 좌석을 활용한 화물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화물사업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그친다.
김 대표는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2066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진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아시아나항공에 약 30년 동안 몸담으면서 기획·재무분야를 오래 맡아온 ‘재무 전문가'로 제주항공의 실적회복 과제가 더욱 무겁게 짊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올해는 포스트 코로나19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회복 탄력성을 극대화 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1965년에 태어났으며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해 미주지역본부장, 경영관리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2017년 아시아나항공 본사 경영관리본부장으로 일하다 감사보고서 사태의 책임을 지고 2019년 4월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2020년 6월 제주항공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인천~싱가포르 노선은 매력적 노선이긴 하다"면서도 "아직 운항과 관련해 결정된 바는 없으며 국토부로부터 싱가포르 노선 외에도 허가받은 다른 노선들도 있기 때문에 아직 운항 여부를 확정해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