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주라면 팔지 않을 것이다.”
하성용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은 올해 1월 기업설명회에서 주요 주주들의 지분매각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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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용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장. |
하 사장은 한국항공우주산업의 기업가치가 앞으로 오를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주요주주들은 지분을 계속 처분하고 있다. 한화그룹과 두산그룹에 이어 현대자동차까지 보유지분을 내놓았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3년 안에 한국항공우주산업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지배구조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 현대차도 한국항공우주 지분 매각
현대자동차는 17일 한국항공우주산업 주식 487만4756주를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가 보유한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은 기존 10.00%에서 4.99%로 떨어졌다.
현대자동차는 이전까지 한국항공우주산업의 2대 주주였으나 이번 지분 처분으로 한화테크윈(지분율6.00%)보다 지분율이 낮아졌다.
이번 지분 처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화테크윈이 한국항공우주산업 주식을 매각한 이후 잠재 오버행(주식 대량매도) 이슈로 기존 주주들이 보유한 지분의 시장출회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언급돼왔다”면서 “이번 지분매각은 오히려 시장의 우려를 해소시키는 등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재무상태가 우량하고 적극적으로 지분매각 의사를 밝힌 적이 없어 이번 지분매각은 예상 외”라면서 “한화테크윈과 현대차의 추가 오버행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한화테크윈이 1월6일 보유지분 10% 중 4%를 처분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항공우주산업 주주들의 지분매각이 이어지고 있다. DIP홀딩스가 한화테크윈 지분 처분 후 1주일 만에 5% 지분 전량을 매도했고 이번에 현대차도 블록딜로 지분을 5% 미만으로 낮췄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정부(산업은행)가 최대주주에 올라있고 대기업들이 지분을 나눠서 보유하고 있는 구조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산업은행과 주주협의회 사이에 맺은 주식 공동매각약정기한이 종료되면서 이런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주주들의 지분 매각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한화테크윈이 보유한 잔여지분에 대한 보호예수기간이 4월 초에 끝나고 현대자동차 역시 남은 지분을 팔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배구조가 어떻게 될지 더욱 주목된다.
◆ 산업은행 지분 매각에 관심 쏠려
관건은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의 매각이다.
산업은행은 2월 말 출자관리위원회를 발족해 자회사 지분매각에 시동을 걸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2월18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비금융 자회사 매각작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 26.80%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연금공단이 보유한 7.6%(2014년 말 기준) 지분을 포함하면 정부 지분이 약 35%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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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
당초 산업은행 지분매각 가능성이 나오면서 여러 기업들이 인수후보로 거명됐다. 기존 주주들 역시 인수후보로 꼽혔다. 특히 한화테크윈 인수 등 공격적으로 방산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는 한화그룹이 유력한 후보로 지목됐다.
하지만 한화테크윈은 보유지분을 가장 먼저 매각하며 한국항공우주산업 인수 가능성을 낮췄다. 두산그룹은 재무여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차그룹은 자금동원력이 높은 곳인데 이번에 지분을 처분하면서 인수후보에서 제외되는 분위기다.
한영수 연구원은 ““현대차는 더욱 높은 가격에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을 매각하려는 의도를 보여 현대차그룹 역시 한국항공우주산업 경영권 취득 의도가 높지 않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주요주주들이 빠져나가면서 인수에 관심이 있는 다른 기업들이 진입하기 더욱 쉬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상우 연구원은 “한화테크윈과 현대자동차는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을 추가로 매각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며 “오히려 기존주주 외 업체의 지분인수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했다.
◆ 정부 지분 빠져나가기 쉽지 않아
그러나 국내 기업의 한국항공우주산업 인수 가능성은 현재로써 크지 않아 보인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지분 치는 17일 종가 기준으로 1조8천억 원이 넘고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할 때 2조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그만한 투자 여력을 갖춘 국내 기업은 사실상 손에 꼽을 정도다.
산업은행이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을 쉽게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방산기업이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에 팔지 못할 경우 매각 대상자를 사모펀드 등 재무적투자자나 외국계기업으로 확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분을 나눠 파는 것도 쉽지 않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사상 최대규모 국책사업인 한국형전투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분을 나눠 팔 경우 경영권이 안정되지 않아 대형사업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제기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최대주주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방산기업의 경우 해외 수출사업 등을 진행할 때 기업 대 정부(B2G)로 하는 경우도 많지만 정부 대 정부(G2G) 성격을 띄는 경우가 많다. 정부 지분이 있는 경우 사업진행이 용이하고 대외 신인도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한국형전투기 개발사업을 수행하고 있을뿐 아니라 20%의 투자지분도 보유하고 있다”며 “정부 입장에서 한국형전투기사업을 무조건 성공시켜야 하는데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을 처분해 불확실성을 높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