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겸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이 수소사업과 한국조선해양 유상증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현대오일뱅크의 성공적 상장이 절실하다.

18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가 올해 다시 기업공개에 나서게 된 배경에는 빠른 정유업황 개선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오늘Who] 현대오일뱅크 상장 3수, 권오갑 돈 쓸 곳 많아 성공 절실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상장과 관련한 계획이 없다는 자세를 보여왔다. 이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정유업황이 부진해 실적이 크게 악화한 탓으로 풀이된다.

현대중공업그룹 주요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이 올해 들어 상장을 추진하면서 다른 계열사의 상장작업은 잠시 미뤄질 것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1분기 코로나19 확산이 잦아들어 세계적으로 경기회복 기대감이 커지면서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1분기 연결기준으로 영업이익 4128억 원을 내며 지난해 같은 기간 영업손실 5632억 원과 비교해 흑자로 전환했다. 지난해 전체 영업손실이 5933억 원이었던 점을 보면 빠르게 반등한 셈이다.

현대오일뱅크는 2022년을 목표로 세 번째 국내 주식시장 상장 도전에 나섰는데 정유업황 호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상장 추진에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석유 수요가 지난해보다 늘어나고 있지만 공급은 아직 위축된 상태"라며 "지난해 코로나19에 부진했던 정유업황은 2022년까지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다"고 내다봤다.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 지난해 말 배럴당 48달러에서 17일 71달러까지 상승했고 앞으로도 당분간 70달러 이상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싱가포르시장 기준 복합정제마진은 6월 1주 차 1.4달러를 보여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지는 4달러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실적 회복에 불안 요소로 꼽힌다.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안에 비정유사업인 석유화학사업에서도 실적 기여를 바라보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롯데케미칼과 설립한 합작법인 현대케미칼을 통해 11월부터 대산공장의 중질유 분해설비(HPC, 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를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중질유 분해설비는 원유 찌꺼기인 중질유분을 원료로 올레핀과 폴리올레핀을 생산하는 설비로 기존 나프타 분해설비(NCC)보다 원가 경쟁력이 높은 장점을 갖췄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는 HPC 가동을 통해 올해 영업이익 800억 원, 내년부터는 매년 영업이익 5천억 원 이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권오갑 회장은 현대오일뱅크 상장을 통해 그룹이 신사업으로 역점을 두고 있는 수소사업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중공업지주는 3월 수소 가치사슬(밸류체인) 구축을 위한 청사진 '수소 드림(Dream) 2030'을 발표했다. 

그룹 계열사들의 역량을 활용해 2030년까지 육상과 해상에서 모두 수소 생산, 운송, 저장, 활용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오일뱅크는 블루수소를 생산해 탈황설비에 활용하거나 차량, 발전용 연료로 판매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2030년까지 전국에 수소충전소 180여 개를 구축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권 회장은 현대오일뱅크의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에도 활용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중간 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관련한 기업결합을 승인받은 뒤 KDB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현물로 출자받는다.

한국조선해양은 그 대가로 1조2500억 원 규모의 한국조선해양 상환전환우선주와 보통주 7%가량을 발행해 산업은행에 넘기고 대우조선해양이 진행할 1조5천억 원 규모의 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조선해양도 현대중공업지주를 대상으로 1조25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로 해 현대중공업지주로서는 충분한 자금이 필요하다.

현대중공업지주는 현대오일뱅크 지분 74.1%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데 현대오일뱅크 상장 과정에서 지분 일부를 구주매출로 돌려 현금을 확보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다.

권 회장은 앞서 현대오일뱅크 상장을 두 차례 시도했는데 모두 상장에 이르지는 못했다.

권 회장은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2011년 상장을 추진했지만 국제유가 하락과 경제 위기 등의 영향으로 실적이 줄면서 상장을 포기했었다.

2018년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부회장 시절 현대오일뱅크 사내이사를 겸하며 두 번째 상장을 시도했다. 당시에는 금융당국의 강화된 회계 감리기준 탓에 절차가 지연되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와 상장 전 지분투자(Pre-IPO)를 체결하며 상장을 미뤘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아람코와 현대오일뱅크 지분 19.9%에 관해 1조8천억 원 규모의 상장 전 지분투자를 맺었는데 이를 토대로 당시 현대오일뱅크 기업가치는 8조 원가량으로 추산됐다.

권 회장은 현대중공업지주와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직 이외에 유일하게 현대오일뱅크 미등기임원에 올라있다.

현대중공업지주 관계자는 "현대오일뱅크는 지정감사인 신청을 바탕으로 상장을 다시 추진하기 시작한 단계"라며 "후속절차를 차질없이 진행해 내년에 국내 주식시장 상장에 성공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