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라는 거대 플랫폼을 등에 업은 디지털손해보험사의 출범은 시장을 넓히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캐롯손해보험이 아직까지 안정적으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정 사장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 정영호 캐롯손해보험 대표이사.
10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카카오손해보험이 출범하면 기존 디지털손해보험사인 캐롯손해보험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카카오손해보험이 수익성 좋은 장기보험시장을 공략하기에는 현재의 디지털 플랫폼만으로 한계가 있고 대면영업을 대체할 혁신적 시스템을 개발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손해보험이 캐롯손해보험의 주력 상품인 퍼마일자동차보험과 비슷하거나 또다른 혁신적 형태의 자동차보험을 내놓는다면 순식간에 캐롯손해보험의 가입자 수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출시된 퍼마일자동차보험의 가입자는 20만 명가량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9일 제11차 정례회의를 열고 카카오페이의 보험업 예비허가를 의결했다. 카카오페이는 6개월 안에 허가요건인 자본금 출자, 인력 채용·물적 설비 구축 등을 이행한 뒤 금융위에 본허가 신청을 할 수 있다
캐롯손해보험 관계자는 "지금까지 캐롯손해보험이 디지털 전환에 고군분투했다면 카카오가 보험업 혁신의 우군이 될 것"이라며 "카카오의 보험 진출로 캐롯손해보험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가설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캐롯손해보험은 디지털보험시장 확대라는 측면에서 카카오손해보험을 반기는 태도를 보이지만 캐롯손해보험과 카카오손해보험의 사업방향성이 맞닿아 있는 만큼 정영호 사장은 긴장을 늦추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주력상품인 퍼마일자동차보험의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이를 토대로 여행자보험이나 팻보험, 휴대폰보험 등 생활밀착형 보험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지인과 함께 가입하는 동호회·휴대전화 파손보험, 카카오 키즈 연계 어린이보험, 카카오 모빌리티 연계 택시 안심·바이크·대리기사보험 등 생활밀착형 보험을 중심으로 사업을 시작한다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결국 카카오손해보험이 자동차보험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바라본다. 카카오의 자동차보험시장 진출 의지도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삼성화재와 카카오페이의 합작 디지털손해보험사 설립이 무산된 것도 자동차보험시장 진출을 놓고 의견이 갈린 점이 크다.
결국 자동차보험과 생활밀착형보험 전반에 걸쳐 캐롯손해보험과 카카오손해보험이 디지털손해보험사로서 경쟁하게 되는 셈이다.
카카오손해보험이 대형플랫폼을 기반으로 보험영업과 판매에 나선다면 정 사장은 국내 첫 디지털손해보험사라는 선점효과를 이어가기 쉽지 않을 수 있다.
4월 기준 카카오페이의 가입자가 3600만 명을 넘긴 데다 카카오 계열 플랫폼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카카오손해보험은 출범과 동시에 강력한 영업망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캐롯손해보험이 아직까지 안정적으로 자리잡지 못한 점도 정 사장에게 부담이다.
퍼마일자동차보험을 출시하고 1년여 만에 가입자 20만 명을 확보했지만 아직까지 전체 자동차보험시장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자동차보험 가입자는 2천만 명이 넘는다.
실적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캐롯손해보험은 지난해 순손실 381억 원을 냈다. 올해 1분기에는 순손실 124억 원을 냈다. 사업 초기인 만큼 인프라 구축비용과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들어간 점을 고려해도 정 사장으로서는 수익성 개선이 시급한 셈이다.
캐롯손해보험 관계자는 "캐롯손해보험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지 이제 1년이 조금 지난 만큼 적자구조는 장기적 관점에서 차차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인프라 구축에 꾸준히 힘써왔고 최근에는 신민아씨를 내세워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서고 있는 만큼 올해에는 퍼마일자동차보험에서 실적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캐롯손해보험이 출범할 때부터 깊이 관여해왔다. 2017년 12월부터 캐롯손해보험 설립추진단장으로 일하다 5월 캐롯손해보험 대표이사에 올랐다.
정 대표는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액센추어에서 일하다 2012년 한화그룹에 들어왔다. 그 뒤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상무보, 한화손해보험 전략혁신담당 상무보, 한화 커뮤니케이션 실장 등을 지냈다.
정 대표는 1972년 태어나 보험업계 대표이사로서는 젊은 편이다. 젊은 감각과 리더십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